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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가에 『삼국지』 비상 걸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한여름 출판가에 『삼국지』 판촉 전쟁이 뜨겁다. 중국에서 수입한 영화 『삼국지』가 11일 개봉됨에 따라 이미 『삼국지』를 펴낸 출판사들은 자사의 책이 「유일한 원본」 「정본」 「진본」 「완역」 「최고」 「평역」이라고 홍보에 열을 올리는가하면 다른 출판사들도『삼국지』 시장에 새로 발을 들여놓을 예정이어서 출판가에 때아닌 『삼국지』 비상이 걸리게 됐다.
현재 주요 서점에서 팔리고 있는 『삼국지』는 고려원·어문각·범우사·민음사·정음사 우석 등에서 펴낸 총 6종.
어문각에서 펴낸 박종화 삼국지는 2백자 원고지 2만장 분량의 「완역」임을 강조하고 소설가로서의 박씨 특유의 문체·기교 등으로 인해 문학적 향기를 높였다고 자랑한다.
우석에서 펴낸 김동리 삼국지는 원본의 3분의 2쯤을 추려 간결 명료한 문장으로 쉽고 재미있게 읽힐 수 있다고 자신한다. 고려원에서 펴낸 정비석 삼국지는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정씨 특유의 유려하고 쉬운 문체로 한번 붙잡으면 독자들을 책으로부터 떨어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앞세우고 있다.
이에 비해 민음사의 이문열 삼국지는 한글세대 작가가 한글세대 독자를 위해 새로 쓴 삼국지임을 강조하고 특히 중국의 정사에 비춰 원작을 일부 개작함과 아울러 작가가 개입, 평을 단 것이 특징이다.
한편 정음사 삼국지는 6·25환도 직후 한국 최초의 라디오 소설을 활자화한 「최고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으며 범우사에서 펴낸 삼국지는 중문학자 황병국씨가 번역, 한시 한수도 안 빠뜨리고 원문 해석에 충실했다는 것을 내세운다.
최근 범우사는 『시중에 나와 있는 삼국지는 일본의 요시카와 에이지가 각색한 것의 번역본이거나 그 아류인데 비해 범우사판 삼국지는 중국 삼민서국의 「삼국연의」를 번역한 원본 삼국지』라는 광고와 아울러 영화 『삼국지』수입 업체 모가드코리아와 함께 선전 팸플릿을 만들어 영화 관객에게 배포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박태원 번역의 『수호지』를 출간,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깊은 샘이 역시 박씨가 완역한 삼국지를 펴낼 계획으로 있어 영화 개봉과 함께 「삼국지 전쟁」은 가열되고 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삼국지』는 진나라의 진수가 위·촉·오 3국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 『삼국지』에 기초, 원·명간의 나관중이 소설화한 중국 4대기서의 제일로 꼽히는 동양 최고의 역사 소설이다.
우리 나라에는 임진왜란 이전 한문 원본으로 읽힌 기록이 보이며 이후 언문본도 나와 널리 읽혔으며 삼고초려에서 적벽전에 패한 조조가 줄행랑놓기까지를 엮은 「적벽가」는 판소리 다섯마당 중 한마당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무속에서 관운장을 신으로 떠받드는 무당들도 많아 『삼국지』가 우리 생활 깊숙히 들어와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일제시대까지 세창서관·영창서관 등에서 언해본으로 소위 「딱지본」 삼국지들이 나오다 현대문으로 최초로 완역된 것은 박태원에 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신시대』라는 잡지 1941년 5월호부터 번역·연재하기 시작한 박씨는 그 뒤 월북, 그곳에서 완역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박태원본은 1948년 역자 이름 없이 정음사에서 출판됐다.
이와 같이 3백여년 전부터 우리에게 들어와 이미 우리의 핏속에 스며들어 우리 것 화된 『삼국지』를 이제 와서 정본·원본·완역하며 서로 내세우는 것은 출판인의 양식을 의심케 하는 얄팍한 상혼이라는 지적도 있다.
중국 본토 및 대만에서도 끝없이 새롭게 삼국지가 씌어지고 있는 만큼 우리도 언제든지 새롭게 『삼국지』를 해석하고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장삿속으로 인해 『삼국지』를 한낱 현대를 사는 처세술로 전락시키지 않고 고전의 향기와 지혜를 어떻게 현대에 맞게 담느냐에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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