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프레스티지 '순간 이동'을 위한 마술사들 불꽃 경쟁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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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대영제국이 최전성기를 누리던 빅토리아 시대(19세기 중반~20세기 초). 영국인은 사상 유례없는 자신감에 들떠 있었다. 전기.철도.전화 등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산업화가 눈부실 정도로 진전됐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경영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자부했다. 이때는 마술의 황금기이기도 하다. 1899년 해리 후디니라는 마술사가 처음으로 마술쇼를 선보이자 대중은 폭발적 반응을 보였다. 당시 런던에는 하룻밤에 5~6군데 극장에서 동시에 마술쇼가 열렸을 정도로 마술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영화 '프레스티지'(11월 2일 개봉)는 이 시기를 배경으로 활동한 마술사 앤지어(휴 잭맨)와 보든(크리스천 베일)의 치명적 대결을 그린다. 둘은 당시 마술에서 최고의 경지로 여겨지던 '순간이동'을 완성하기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인다. 순간이동은 마술사가 갑자기 무대에서 사라진 뒤 관객이 어리둥절하는 사이에 다른 곳에서 나타나는 마술이다.

그런데 마술에는 누구나 알다시피 결정적 한계가 있다. 바로 '눈속임'이다. 신화나 동화의 세계가 아닌 현실에선 제아무리 뛰어난 마술사라도 초자연적 기적을 일으킬 순 없다. 앤지어와 보든도 뛰어난 눈속임 기술을 감추고 있으면서 서로 상대방의 비밀을 캐려고 애쓴다. 이들은 때로 대중을 확실히 속이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기도 한다.

관객은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눈속임의 비밀을 궁금해 할 것이다. 비밀은 마지막 장면에 충격적 반전과 함께 드러난다. 그러나 영화는 비밀보다 주인공의 집요한 경쟁심과 최고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서 마술을 통해 바라본 빅토리아 시대의 기묘한 분위기를 느껴 보기를 권한다. 현란한 마술쇼가 펼쳐지고 대중이 열광하는 사이 무대 뒤편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모습은 빅토리아 시대뿐 아니라 현대사회의 본질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는 근대 산업화의 화려한 겉모습은 어찌 보면 마술 같은 눈속임과 희생으로 이뤄진 게 아니냐는 질문도 던진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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