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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휴거소동...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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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 29일.

공부도, 일도 하지 않고 '생명강'에 흐르는 젖과 꿀을 먹으며 영생한다는 하늘나라 '다미타운'행을 갈구하며 예수재림을 꿈꾸던 2만여명의 신도들은 어제와 똑같은 아침을 맞아야 했다.

그해 10월 28일 자정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주장하던 일명 '휴거일'이었다. 흰 소복차림으로 하늘을 향해 두팔을 뻗으며 광적으로 손뼉을 치고 찬양가를 부르던 그들의 모습은 마치 신들린 사람들 같았다.

텔레비젼 등을 통해 이 광경을 본 일반인들은 한편으로는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시계바늘은 자정을 지나고 이들의 신념에 대한 어떠한 응답도 없었다. 한편의 코미디로 끝나 버린 이날 소동은 그러나 휴거를 확신하고 학교·직장·가정을 외면한채 교회에 전재산을 바쳤던 일반 신도들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휴거가 무산될 경우 우려되던 광신도들의 집단자살극·자해소동 등은 경찰의 철저한 사전대비와 여론의 감시로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지만 병든 종교가 우리에게 던진 메세지는 분명 우려스러운 것이었다.

'종말론' 등을 내세운 사이비 종교집단의 문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한 사람의 목사가 있다고 해서 수만의 광신도가 생기고 이것이 사회불안 요인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전체의 자정능력이 전무함을 뜻한다. 우리 스스로 이를 개탄하고 부끄러워 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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