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점에 채이고 백화점에 치이고 … 테마상가 "뭉쳐야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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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올 여름 서울 동대문에서 문을 연 R쇼핑몰이 최근 셔터를 내렸다. 패션을 테마(주제)로 영업을 시작했으나 점포 임대가 잘 안 돼 일시적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 쇼핑몰 투자회사 관계자는 "일대에 빽빽한 패션테마 쇼핑몰로 임차상인 구하기가 어려워 용도를 바꿀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쏟아져 나온 테마상가가 위기를 맞았다. 테마상가는 한 개의 업종이 중심인 대규모 쇼핑몰을 말한다. 동대문의 패션쇼핑몰이 가장 먼저 나온 이후 2000년대 들어 서울과 수도권에서 ▶전자▶어린이▶애견▶한약재 등을 테마로 한 상가가 잇따랐으나 활성화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테마상가 가운데는 패션과 의류를 내세운 상가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구매패턴의 변화 때문이다. 서울 영등포역 앞에 의류전문 상가로 지난해 문을 연 L쇼핑몰은 전체 8층 중 지하 1층과 지상 1, 2층만 문을 열고 3층부터는 에스컬레이터 운행이 중지됐다. 입점하는 상인이 없는 데다 구매고객도 뜸한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상가정보연구소 박대원 연구원은 "중저가 패션은 온라인 쇼핑몰과 할인점에 치이고 고급고객은 백화점에 뺏겨 패션테마의 경우 '끼인 상가'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2004년 여름 문을 연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약령상가도 심각한 공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근 재래시장의 약재상인들을 끌어들일 계획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한약재상은 약재를 쌓아두려면 큰 매장을 필요로 하는 데다 이 업종은 단골 중심의 장사여서 쇼핑몰 입점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애견.키즈(어린이).가전 등을 주제로 내건 테마상가의 경우 수요 창출의 한계로 어려움을 겪는다. 서울 서초구에서 지난해 개점했던 O쇼핑몰은 어린이 의류와 용품을 테마로 정했으나 영업이 되지 않아 올 상반기 문을 닫았다. 2002년부터 서울 중구에서 애견 전문상가를 추진했던 W쇼핑몰은 현재 사업이 중단됐다.

부동산개발업체인 더브릭스 김상태 사장은 "상가 규모는 큰데 수요층이 적기 때문에 임차인을 끌어들여 상권을 활성화하기 어렵다"며 "특히 이런 테마의 경우 기존 상인들이 재래전문상가에서 잘 빠져나오지 않으려 한다"고 풀이했다.

이 때문에 일부 테마쇼핑몰은 내부를 뜯어고치고 업종을 보완해 '복합상가'로 방향을 틀기도 한다. 서울 용산에서 지난해 초 문을 열었던 전자제품 전문 상가 스페이스나인은 빈 점포에 따른 영업난을 극복하기 위해 이름을 아이파크몰로 바꾸고 운영방향을 틀었다. 올 8월 아이파크 백화점을 연 데 이어 기존 전자점포 3만3000평을 쪼개 아이파크 리빙몰(생활용품점)과 레포츠몰을 추가했다. 아이파크몰 김영민 팀장은 "테마상가로는 한계가 있어 복합쇼핑몰로 바꾸고 있다"며 "백화점을 개점한 뒤 고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분당 W쇼핑몰도 패션테마에서 백화점으로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으며 분당에서 애견전문 상가를 계획했던 Z쇼핑몰은 오피스텔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황성근.김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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