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불변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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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16강전 하이라이트>
○. 왕야오 6단 ●. 이세돌 9단

정석은 보물창고다. 천재들의 연구가 긴 세월의 검증을 거친 정석 속에는 바둑의 방법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어떠한 정석도 불변은 아니며 같은 정석이라도 주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정석 원리주의'에 집착하는 자는 그래서 고수가 되지 못한다.

정석을 안 다음엔 다시 깡그리 잊고 백지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그 백지에 자신의 그림을 그려야 하므로.

장면도(33~44)=33~37까지 선수한 뒤 이세돌 9단은 드디어 39로 축머리를 뒀다. 통렬한 한방이다. 이 축머리 때문에 우상 정석은 쓸 수 없다는 것인데 왕야오(王堯) 6단은 왜 이러는 것일까.

40으로 끊어 축을 막자 41로 푹 뚫고 들어간다. 검토실의 프로들이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고개를 젖고 있다. 그러나 왕야오는 42로 씩씩하게 따내더니 43으로 몽땅 잡혀버린 좌하귀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44로 공격하고 나선다.

"혹시 연구해 온 수순인가."

"그래도 흑 실리가 너무 큰데."

"아냐. 빵때림(42)이 두텁고 공격(44)도 은근해서 만만치 않아 보여."

"감히 이세돌에게 이런 수를 쓰는 걸 보면 중국 측이 연구해 온 게 틀림없군. 그렇더라도 흑이 나쁠 리는 없어."

그래도 흑이 나쁠 리는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백이 절대 안 된다던 오랜 믿음에 비춰 볼 때 많이 후퇴한 발언들이다. 그렇다. 이 형태는 당분간 연구가 집중될 것이고 이런 과정을 거쳐 금기는 깨지고 새로운 정석이 유입될 것이다.

43은 큰 수다. '참고도' 흑1로 두는 수도 굉장한 곳이지만 6까지 좌하귀가 살아버리면 싱겁게 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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