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나이 서른 둘이던 장남 정영훈(사진) 전무가 회사를 이어받았다. 2003년초 대표이사에 공식 취임했다. 1997년부터 K2코리아에서 일하며 경영 수업을 쌓았다지만 30대 초반의 나이. 주변에선 "과연 선친이 일궈 놓은 K2라는 브랜드를 지켜갈 수 있을까"하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왔다.
그로부터 약 4년. 2002년 340억원이던 K2코리아의 매출은 지난해 1200억원으로 불었다. 올해는 150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4년 만에 네 배로 커진 것이다.
정대표는 "회사의 전통을 살리면서 혁신을 한 게 고속성장의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선친이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제품은 최고로 만들자"는 말을 지키고, 여기에다 판매 방식을 혁신한 것이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최고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K2코리아는 한해에 한 해 35만여 점(300여종) 이르는 제품을 구석구석 살피는 품질관리를 한다.
"등산용품은 고객의 안전과 밀접하기 때문에 제품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고 정 대표는 설명한다. 선친 때는 검사를 회사밖에 맡겼지만 지금은 본사가 직접 한다. 2003년부터는 K2 브랜드 제품만 파는, '단독 브랜드 매장'을 열었다. 국내에선 등산용품 단독 브랜드 매장을 찾아볼 수 없던 때였다. 등산용품 전문점이나 대형할인점에서 이 브랜드, 저 브랜드 섟어 팔던 때였다. 정 대표는 "도박에 가깝지만, 브랜드 이미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이런 승부수가 필요하다"고 임직원을 설득했다. 전략이 먹혀 매출이 쑥쑥 늘었다. 현재 K2코리아는 전국에 130개의 단독 매장을 갖고 있다. 물론 이 회사가 넘질 못할 봉우리가 있다. 바로 'K2'다. 이 브랜드로는 수출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 스포츠용품 회사 'K2'와 벌인 소송의 결과다. 90년대 후반 미국 K2가 낸 소송에서 국내 법원은 " K2코리아는 K2 브랜드로 수출을 할 수 없고, 미국 K2는 한국에서 판매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해외 유수 브랜드의 라이선스를 얻는 방식으로 수출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 취임 당시 그는 "마흔 살에 매출 1000억원이 목표"라고 했었다. 목표는 5년을 앞당겨 달성했다. 정 대표는 "최근 시작한 캐주얼 웨어 사업과, 준비 중인 골프 의류 사업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회사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 회사는 웬만한 대기업 못지 않은 직원 복지 체계도 갖추고 있다. 주 5일 근무는 90년대 초반에 도입했다. 직원 자녀 학자금은 대학까지 100% 지원한다. 직원들의 사설 학원 수강료도 전부 대 준다. 그래서인지 이직이 거의 없다. 한 해 한 두 명 정도라고 한다. 노사 분규는 회사 설립 이래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미래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연구개발(R&D)에 매년 매출의 5~7%를 투자한다. 매출비율로 따지면 첨단 전자업체 못지 않다. 지난해에는 물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서울 성수동에 지상 7층, 지하 1층 규모의 대형 자동물류센터를 세웠다.
글=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사진=강욱현 기자
▶2005년 매출 : 1200억원
▶종업원 수 : 550명
▶생산 품목 : 등산화, 등산의류, 등산용품, 산업안전화 등
▶본사 : 서울 성수동
▶주요 연혁
-1972년 : 한국특수제화 설립
국내 최초 등산화 '로바' 양산
-1981년 : K2상사로 상호 변경
-1995년 : 의류.등산용품 생산 시작
-2000년 : K2코리아로 개명
-2002년 : 서울 성수동 사옥 준공
-2003년 : 현 정영훈 대표이사 취임
-2005년 : 매출 1000억원 돌파
자료:K2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