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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중견기업] 등산용품 전문업체 K2 정영훈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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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002년 6월 63세의 한 기업인이 북한산 절벽을 타다 떨어져 사망했다. 등산용품 전문업체 K2코리아의 고(故) 정동남 사장이었다.

당시 나이 서른 둘이던 장남 정영훈(사진) 전무가 회사를 이어받았다. 2003년초 대표이사에 공식 취임했다. 1997년부터 K2코리아에서 일하며 경영 수업을 쌓았다지만 30대 초반의 나이. 주변에선 "과연 선친이 일궈 놓은 K2라는 브랜드를 지켜갈 수 있을까"하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왔다.

그로부터 약 4년. 2002년 340억원이던 K2코리아의 매출은 지난해 1200억원으로 불었다. 올해는 150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4년 만에 네 배로 커진 것이다.

정대표는 "회사의 전통을 살리면서 혁신을 한 게 고속성장의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선친이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제품은 최고로 만들자"는 말을 지키고, 여기에다 판매 방식을 혁신한 것이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최고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K2코리아는 한해에 한 해 35만여 점(300여종) 이르는 제품을 구석구석 살피는 품질관리를 한다.

"등산용품은 고객의 안전과 밀접하기 때문에 제품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고 정 대표는 설명한다. 선친 때는 검사를 회사밖에 맡겼지만 지금은 본사가 직접 한다. 2003년부터는 K2 브랜드 제품만 파는, '단독 브랜드 매장'을 열었다. 국내에선 등산용품 단독 브랜드 매장을 찾아볼 수 없던 때였다. 등산용품 전문점이나 대형할인점에서 이 브랜드, 저 브랜드 섟어 팔던 때였다. 정 대표는 "도박에 가깝지만, 브랜드 이미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이런 승부수가 필요하다"고 임직원을 설득했다. 전략이 먹혀 매출이 쑥쑥 늘었다. 현재 K2코리아는 전국에 130개의 단독 매장을 갖고 있다. 물론 이 회사가 넘질 못할 봉우리가 있다. 바로 'K2'다. 이 브랜드로는 수출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 스포츠용품 회사 'K2'와 벌인 소송의 결과다. 90년대 후반 미국 K2가 낸 소송에서 국내 법원은 " K2코리아는 K2 브랜드로 수출을 할 수 없고, 미국 K2는 한국에서 판매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해외 유수 브랜드의 라이선스를 얻는 방식으로 수출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 취임 당시 그는 "마흔 살에 매출 1000억원이 목표"라고 했었다. 목표는 5년을 앞당겨 달성했다. 정 대표는 "최근 시작한 캐주얼 웨어 사업과, 준비 중인 골프 의류 사업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회사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 회사는 웬만한 대기업 못지 않은 직원 복지 체계도 갖추고 있다. 주 5일 근무는 90년대 초반에 도입했다. 직원 자녀 학자금은 대학까지 100% 지원한다. 직원들의 사설 학원 수강료도 전부 대 준다. 그래서인지 이직이 거의 없다. 한 해 한 두 명 정도라고 한다. 노사 분규는 회사 설립 이래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미래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연구개발(R&D)에 매년 매출의 5~7%를 투자한다. 매출비율로 따지면 첨단 전자업체 못지 않다. 지난해에는 물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서울 성수동에 지상 7층, 지하 1층 규모의 대형 자동물류센터를 세웠다.

글=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사진=강욱현 기자

▶2005년 매출 : 1200억원

▶종업원 수 : 550명

▶생산 품목 : 등산화, 등산의류, 등산용품, 산업안전화 등

▶본사 : 서울 성수동

▶주요 연혁

-1972년 : 한국특수제화 설립

국내 최초 등산화 '로바' 양산

-1981년 : K2상사로 상호 변경

-1995년 : 의류.등산용품 생산 시작

-2000년 : K2코리아로 개명

-2002년 : 서울 성수동 사옥 준공

-2003년 : 현 정영훈 대표이사 취임

-2005년 : 매출 1000억원 돌파

자료:K2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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