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안 열어줘 피해 커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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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일 오전 5시55분쯤 충남 공주시 교동 원희정신과의원에서 불이 나 양모(62.충남 공주시 산성동)씨 등 입원 중이던 환자 5명이 숨지고, 김모(36.충남 공주시 계룡면)씨 등 3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날 불은 4층 건물 중 3층에 있는 병원 100여 평을 대부분 태우고 50분 만에 진화됐다.

소방서가 병원에서 500여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인명 피해가 컸던 것은 신고가 늦어 초기 진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병원 당직자 유모(38)씨는 "당직근무 중 치료실에서 화재가 나 자체적으로 진화하던 중 폐쇄회로 TV를 통해 다른 곳에서도 연기와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119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입원 환자들은 대부분 알코올 중독 등 중증 정신지체 장애인이어서 신속하게 대피하지 못했다.

공주소방서 관계자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땐 이미 건물이 불길에 휩싸였다"며 "옥상으로 대피한 환자들은 쉽게 구조했으나 창문에 방범용 창살이 설치돼 있어 입원실 환자를 구조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화재로 부상을 입은 최모(42)씨는 "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했는데도 당직 보호사가 '불 꺼졌으니 모두 방으로 들어가라'며 열어주지 않았다"며 "뒤쪽에 있던 비상구만 열어줬어도 피해가 이처럼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프로그램실.대기실.간호사실 등 네 곳에서 발화한 것으로 추정하는 한편 숨진 환자 이모(43.여)씨가 불을 지른 것으로 보고 화재 원인을 수사 중이다.

공주경찰서 천인선 수사과장은 "이씨가 발화 지점으로 보이는 프로그램실로 들어갔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있고, 프로그램실에서 라이터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폐쇄회로 TV를 분석해 이씨가 오전 5시47분쯤 프로그램실로 들어간 뒤 3분 후 화재가 발생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씨는 우울증으로 4일 전 이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은 담뱃불에 의한 실화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편 공주시는 이준원 시장을 본부장으로 하고 보건소장.자치행정과장 등 13명으로 사고대책본부를 구성해 유족들과 장례 절차, 보상 등을 논의하고 있다.

공주=서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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