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장래 신생 독일 손에"-피에르 를루슈<불 국제관계기구 부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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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프랑스의 유럽문제 전문가인 피에르 를루슈 국제 관계기구 부국장은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러뷴지의 기고문에서 『통독의 나토 (북대서양 조약기구) 가입이 소련의 승인을 받았지만 나토의 장래는 신생독일의 손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그의 기고문 요지. 【편집자주】
나토 (NATO)를 비롯해 EC(구공체)·소련 등은 공산주의를 개혁시키데는 성공했기만 이제 그들 자신이 변화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그들은 공산주의 개혁으로 말미암아 부상하고 있는「신세계」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필사적으로 벌이고 있는 것이다.
나토는 최근 더욱 거세진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적대 대상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군사동맹을 유지하자는 주장에 합리성을 찾지 못하고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같은 합리성에 대한 의문은 미국이 군대와 핵무기를 철수하고서 어떻게 유럽에 대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특히 나토가 소련에 대한 집단 방위 체제로서의 현재 모습을 상실할 때 어떤 방법으로 그 군사동맹을 존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도 문제다.
나토의 16개 회원국들은 지난 6월6일 런던회담에서 소련에 대해 전진 방어 및「유연반응전략」개념을 포기하도록 하는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등 달성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일련의 인상적인 노력을 시도했었다.
이러한 개혁노력들은 현재의 나토를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이상한 복합동물로 새로 태어나게 만들 수도 있다. 새로 태어날 나토의 새 모습을 한번 그려보면 우선 그 머리는 미국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통합군의 지휘구조는 계속해서 미국의 유럽 최고연합 사령관의 지휘를 받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 허리는 홀쭉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유럽 파견군의 최소한 3분의2가량을 철수(32만5천명에서 7만∼10만명으로 감축)하고 통독군 역시 콜-고르바초프 합의에 따라 37만명으로까지 줄어들 전망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핵 폭탄의 일방적 철수 및 남아있는 단거리 전술핵무기 협상의 전개에 따라 핵으로 만들어진「근육」또한 상당히 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으로 새 동물(나토)의 꼬리는 소련대사관이 될 것이다. 소련은 나토 회담에 참관인의 자격으로 참석하게 될 것이다.
한편 그 신생동물의 행동양태는 아직은 불명확하다. 물론 전진방어의 개념은 소멸할 것으로 보인다.
콜 서독총리가 동독을 나토방위 범위에서 배제하겠다고 약속한데다 통독이 눈앞에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진방어는 심층방위로 바뀌어질 수 있다. 군 병력을 보다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유연반응전략 역시 사라져간다. 이제 핵무기는 최후 의존수단으로서만 사용할 수 있게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의존 전략체제하의 대량 보복시대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30년 전에도 신뢰할 수 없었던 그 전략이 오늘날이라고 해서 가능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제 남아있는 것은 나토라는 이 새로운 동물이 과연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나토가 어떤 형태로든 존속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신생독일의 수중에 달려있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토내 독일의 장래에 대한 중대결정이 나토 정상회담이 아닌 콜 서독 총리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간의 회담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콜 총리는 거기서 통독의 나토가입을 소련으로부터 양보 받았다. 그러나 나토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불명확하다. 콜 총리가 그 대가로 지불한 것 중에는 나토 동맹국 등과 관련있는 두가지 중요한 전략적 변화가 포함돼 있다. 첫째는 이전의 동독지역이 나토의 관할권밖에 머물러 있어야 하며 EC에는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독군은 나토에 통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요구한대로 독일군 병력을 37만명으로 감축한다는 것이다. 그 숫자는 콜 총리가 동맹국들과의 상의없이 독자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장차 새로 태어나게 될 나토의 집단 방위체제에 독일이 계속 머물러 있게 될지의 문제는 앞으로 남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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