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협대출 허점 최대한 악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경기도 고양군 축협 6백70억 원 부정대출 사건은 돼지농장을 경영하는 일개 농장주인 정남회씨(36)가 축협간부와 짜고 지역농민들이 맡긴 돈을 수시로 인출, 이를 부동산투기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88년부터 1년간 축협 이사 직을 맡았던 정씨는 고양 축협 본 소와 원당·능곡·일산 등 4개 단위 조합에 당좌거래를 트고 축협발행 자기앞수표는 현금결제 과정에서 부도가 나지 않으면 발각되지 않는다는 제도적 허점과 축협경기도지회가 연1회 실시하는 정기감사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 등을 악용, 현금을 입금시키지 않고 당좌수표를 발행해 이를 자기앞수표로 맞바꾸는 수법 등으로 2년 동안 6백70억 원을 제돈 쓰듯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양주축협 화계 지소 장 정두호씨(54)와 벽제 지소 대리 이택서씨(39)는 각각 아홉 차례와 네 차례에 걸쳐 6백50만원과 9백90만원의 뇌물을 받고 정씨가 당좌수표를 입금시키면 마치 현금이 입금된 것처럼 전산단말기와 전표를 허위 작성해 부정대출을 도운 것으로 밝혀졌다.
거액부정대출사건의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해 7월20일 고양축협 상무였던 김의석씨(39·축협중앙 회 소속 양 토 조합 전무)가 제1금융권 거래은행인 축협중앙 회 오류기점으로부터『예치금이 없는 자기앞수표의 남발로 고양축협이 9억8천만원을 부도내게 됐다』는 통보를 받으면서부터. 제2금융권인 고양축협은 자기앞수표 발행을 위해서는 발행액수만큼의 현금을 제1금융권 거래은행에 예치해야 되는데 정씨와 결탁한 직원들이 일단 현금이 입금된 것처럼 조작, 수표를 발행한 뒤 차후 정씨가 융통해 온 현금으로 예치금을 입금시키고 정씨가 결제시기에 돈을 입금시키지 못할 경우에는 고객예금으로 예치금을 입금시켜 오다 돈줄이 일시에 막혀 부도위기에 놓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수사결과 정씨와 상무 김씨는 고양축협이 부도위기에 처하자 급히 사채를 끌어들여 위기를 넘긴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축협중앙 회 감사에서 부정대출 사실이 밝혀져 50여명의 고양축협 직원 중 30여명이 타도 전출·감봉 등의 징계를 당했다.
축협조합원들에 따르면 군 단위 축협은 축산영농자금 등으로 최고 8천만원까지 대출해주고 있으나 감정평가한 부동산등을 담보로 제공해야하는 등 대출 절차가 무척 까다롭다.
그러나 지난 87년부터 부동산투기에 눈을 뜬 정씨는 경기도 일대 및 전국주요 개발지 땅 매입과 건설회사운영 등으로 자금이 부족하자 부동산 담보도 없이 축협간부 정·이씨와의 친분을 이용, 축협 돈을 맘대로 빼내 쓴 것이다.
정씨가 그동안 거액의 자기앞수표를 부정대출 받아 유통시키면서도 부도위기를 넘긴 것은 경기도 일대에 상당한 양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데다 필요할 경우 1억∼2억 원 정도는 쉽게 융통할 수 있는 재력가이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6월말 현재 축협중앙 회 산하 시-군 단위조합은 총 1백68개소. 지난 5월에는 화성군 화서 농협 전무 등 간부직원 2명이 부동산매입자금 조달을 위해 현금을 입금시키지 않고 자기앞수표 3억원을 발행, 검찰에 구속돼는 등 크고 작은 단위조합 창구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축협중앙 회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전국 시-군 단위조합장은 각 시-도지회가 연 1회씩 정기감사를 실시하고 있으나 각 단위조합이 일정기간 동안 예치금을 부정대출하고 감사기간을 앞두고 변제할 경우 이를 적발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수원=이철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