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스런 북한의 양면성(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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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0여년간 동족이면서 이민족 이상의 적대관계속에서 고착되어온 남북한 관계를 푸는 작업은 선의를 바탕으로 한 신뢰회복이 전제조건임을 우리는 누누이 강조해왔다. 그런데 북한은 눈앞에 다가온 고위회담을 앞두고 또다시 이 기본 요건을 망각하고 속셈이 빤히 들여다 보이는 양면작전을 쓰고 있다.
한편으로는 대화를 진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한내부의 혼란을 부추겨 이용하려는 북한의 불성실한 의도가 국회회담을 연기하겠다는 일방적 통고에서 거듭 확인된 것이다.
북한의 전략은 집요하리 만큼 일관된 기본방침으로 지금까지 그들과의 접촉에서 숱하게 경험했기 때문에 크게 놀랄 일은 못된다. 북한이 양면작전을 구사하겠다는 의도는 남북한 대화 재개가 거론된 지난 한달사이에 이미 몇차례나 거듭되었다.
지난 5월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일성이 조국통일 5개 방침을 내놓으며 전민족적인 통일전선 구축을 기본방침의 하나로 천명했었다.
이에따라 북한은 당국자간의 남북한 대화재개 의사를 밝히는 한편 6월4일 평양의 정당ㆍ사회단체 대표의 이름으로 우리측의 보안법 철폐와 그들이 말하는 민주인사의 석방을 촉구했었다.
이어 7월6일에는 일방적으로 판문점을 개방한다는 조국통일평화위원회의 성명을 통해 남북한의 자유왕래를 실현시켜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북한의 이러한 제안들은 실상 그들이 8월15일을 기해 판문점에서 남북한과 해외의 각종 단체가 참가하는 범민족대회를 염두에 둔 것으로 평가돼왔다.
남한 내부의 일부에서 호응하는 세력들로 하여금 이 기회를 이용,정부의 북방정책을 비판하면서 충돌하게 만들어 혼란을 야기시키려는 전략임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한 기회를 포착하는데 북한은 언제나 그럴듯한 명분과 이유를 내세워 남북한대화를 이용한 예는 이미 여러차례 있어 왔다. 우리 측에 급격한 정치변동이 있거나 정치적 불안정상태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남북한 대화를 중단하곤 했던 것이다.
73년 남북조절위원회와 적십자회담을 북한측이 일방적으로 중단할 때는 당시 김대중씨 납치사건으로 국내정세가 뒤숭숭할 때였으며 금년초 대화를 중단할 때는 3당 통합으로 급격한 정치적 변동이 있을 때였다. 이를 구실로 회담을 중단하며 북한은 늘 남한의 정치적 혼란을 심화시키려는 선전공세를 벌여왔었다.
이런 전례에 비추어 이번 우리 국회의 파동은 북한측에 그들의 양면전략을 구사하는데 또 한번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측은 이를 기화로 우리의 불안을 더욱 조성하겠다는 태도를 또다시 보이고 있다. 이는 남북한 회담에 북한이 아직 전향적으로 응할 의사가 없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이처럼 소극적으로 나오거나 정치공세를 벌일 틈을 주지 않고 남북한 대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우리로서도 국내적으로 정치ㆍ사회적 혼란을 불러올 국회파동같은 어리석은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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