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드나드는 물품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중국 세관원 "물건 내려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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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화물 트럭들이 17일 북·중 국경지대인 중국 단둥 세관에서 검색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단둥(중국) AFP=연합뉴스]

17일 오전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세관의 물류창고 앞. 중국에서 구입한 물품을 북한으로 보내려는 중국인, 중국동포, 북한인 무역업자들로 크게 붐볐다.

오전 9시30분 통관서류 심사 창구에는 6개의 긴 줄이 만들어졌다. 중국 세관 직원들이 서류를 꼼꼼하게 검사하는 바람에 통관 처리 시간이 평소보다 두 배 이상 걸렸기 때문이다.

중국인 무역업자인 왕루양(王路洋)은 "점점 검사가 까다로워지고 있다. 옛날엔 서류 검토 후 화물을 대충 훑어보는 것으로 통관이 끝났는데 지난주부터 검색이 부쩍 강화됐다"며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보이는 게 있으면 무조건 끌어내린다"라고 말했다.

현지 언론도 "지린(吉林)성 훈춘(琿春) 항구에서도 화물검색이 훨씬 엄격해졌고 교량을 통한 일반 여행객들의 북한 진입도 중단됐다"고 전했다. 중국 언론이 당국의 대북 화물 검색 사실을 전한 것은 이례적이다.

중국이 핵실험 이후 북한에 대한 제재를 구체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북한산 수산물과 농산물을 가지고 16일 단둥으로 건너온 북한 무역업자 정모.박모씨는 17일 오전 기자를 만나 "오늘 아침 중국은행(중국 4위의 상업은행)으로부터 당분간 북한으로 송금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책상을 내리치며) 중국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흥분했다.

중국은행은 북한의 광서은행과 손잡고 단둥에서 합동사무소를 운영해왔다. 그동안 송금도 주로 이 합동사무소를 통해 이뤄졌다. 중국 초상(招商)은행과 북한 무역은행 간의 합작사무소를 통해 이뤄져 왔던 대북 송금도 2주 전부터 금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무역업자들은 "합동사무소의 중국은행 관계자가 '중국인(조선족 포함)은 물론 한국인 등 외국인이 중국은행이나 합동사무소를 통해 북한으로 송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며 "북한인은 송금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물품송장 등 자금출처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요컨대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북한 사람의 이름만 빌려 송금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도 17일 복수의 중국 금융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중국은행의 대북 송금업무가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도 북한에 송금할 때는 엄격한 심사가 필요했지만 앞으로는 특별한 허가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행 베이징(北京)지점 외에 무역업자들이 몰려 있는 선양(瀋陽)과 단둥 지점들도 북한을 외환거래 금지 명단에 올렸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중국 외교부의 류젠차오(劉建超)대변인은 17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에서 중국으로 송금하는 일은 여전히 가능하다. 중국동포 무역업자 황모씨는 "북한에서 중국으로 돈을 보내는 걸 중국 당국이 막을 이유가 없다"며 "단지 보낼 돈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니컬러스 번스 미 국무부 차관도 이날 미 CBS와 CNN 방송에 출연해 "중국이 안보리 대북 결의를 북.중 국경지대에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암시를 오늘 아침 받았다"며 "중국이 1400km에 달하는 북한과의 국경지역에서 북한으로 드나드는 트럭을 검색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단둥=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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