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벼랑서 돌아서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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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원 유급이라는 벼랑에까지 몰린 세종대사태가 경찰의 재투입,수업 독려차 나온 문교장관과 총장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로 거듭 악화되고 있다.
1년6개월을 넘기도록 학내 분규로 악화일로를 걸어온 대학에서 1학기 동안 두차례에 걸쳐 총장이 학생들에 의해 문밖으로 쫓겨나고 공권력이 재투입되는 해괴한 작태를 보면서 과연 대학의 양식과 자율성은 어디 갔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대학 내부의 문제는 재단ㆍ교수ㆍ학생들의 이성과 양식에 따라 자율적으로 해결되어야 함이 대학발전을 위한 기본 구도임을 거듭해서 주장해 왔고 세종대 또한 타대학의 그러한 모범적 선례에 따라 자율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하고 촉구해 왔다.
그러나 사태는 수많은 학부형의 애타는 마음과 사회의 근심어린 눈초리에도 불구하고,경찰의 외곽봉쇄라는 타율적 강제수단에 의해 임시방편으로 불씨를 끄는 데 그쳐버렸다.
경찰이 철수하면 소요가 다시 일고 경찰이 투입되면 소요가 진정되는 이런 악순환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이고,또 언제까지 경찰의 보호아래 수업을 받는,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대결상을 계속할 작정인가.
지난 학내 민주화를 위한 갈등과 분규속에서 이미 많은 대학은 양식과 이성에 따라 대학발전을 위한 내부적 합의와 질서를 스스로 구축해 놓았다. 총장선출이라는 문제를 앞에 놓고 적어도 교수와 학생이 멱살잡이를 할 수 없다는 것,학내 투쟁을 빌미삼아 수업을 전폐하거나 담보로 삼는 것은 결코 대학발전을 위한 길이 아님을 대학 스스로가 체득한 오늘이다.
그것이 바로 대학의 양식이고 이성이면서 대학의 자율적 발전을 기하는 서로의 양보이기도 하다. 타율적 미봉책으로 끝난 세종대 분규사태를 원천적으로 풀어나가는 길은 오늘의 여타 대학이 취하고 있는 바로 그런 대학인의 자세를 늦은 지금이나마 재단ㆍ교수ㆍ학생이 함께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첫째,재단이 지금까지의 고식적 현상유지 고수에서 벗어나 보다 설득력 있는 대안을 학생들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뒤늦게 재단설립자가 이사직을 사퇴한 조처만으로 만사가 끝난 듯 방관할 것이 아니라 현안의 문제인 총장선출방식에 대한 새로운 대안제시가 구체적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아울러 재단이 학교발전을 위해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청사진도 제시되어야 한다. 분규의 핵심이 재단에 대한 깊은 불신에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종래의 재단 모습을 일신할 획기적 발전계획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재단과 학생사이에서 완충역할과 조정기능을 해야 할 교수들도 이번 사태에 대해 미온적ㆍ방관자적 자세를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사태의 핵심을 풀어나갈 지혜를 짜고 학교발전을 위한 대안을 교수 전체의 이름으로 제시하는 능동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교수협의회와 재단의 갈등이 상존하는 한 대학의 분열과 갈등은 결코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끝으로 학생들도 자신들의 책무이자 권한인 수업이 소수의 주동학생들에 의해 박탈당하고 있고 경찰의 강권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 부끄러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수업을 담보로 한 학내 분규는 대학의 어느 누구에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깊은 반성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책무와 권한을 스스로 지킬 줄 아는 용기를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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