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되면 밤잠 설치는 박용대 기상대장(일요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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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하늘의 조화」 다 알 수 있나요/이달 하순께 또 한번 큰 비/기상대 야유회날도 비온 적 많아/북한과의 자료교환 빨리 됐으면…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걱정과 일거리가 많아지는 사람들­기상대 공무원들이다.
태풍이 한반도에 접근할 기미가 보이면 어디로 지나갈 것인지 밤잠을 설쳐가며 마음졸여야 하고 물난리로 인명과 재산피해가 나면 기상대 직원들은 자기탓인양 풀이 죽는 「음지의 사람들」이기도 하다.
바빠진 중앙기상대를 찾아 박용대대장(58)을 만나 기상에 관한 이모저모를 들어보았다.
박대장은 연세대 물리학과를 54년에 졸업,4년간의 기상장교를 거쳐 59년부터 기상대에 몸담아 지금까지 35년째 기상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그동안 예보국장,기상연구소장,강릉지방기상대장,응용기상국장을 거쳐 88년 3월부터 제6대 대장직을 맡고 있다.
­금년 여름날씨 전망은 어떤지.
▲장마가 예년보다 4∼5일 먼저 시작됐다. 예년과 달리 장마전선이 북쪽에서 갑자기 내려와 초기에 집중호우로 다소 피해가 발생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번 장마는 7월 중순까지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하순 초반에 한두차례 많은 비를 뿌린 후 하순 후반부터는 본격적인 여름 날씨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에 태풍이 하나 정도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여름휴가는 언제 갈 것인가.
▲언제 어디서 집중호우로 물난리가 나고 태풍이 몰아 닥칠지 모르는데 기상책임자로서 어떻게 휴가를 가겠는가.
나뿐 아니라 다른 예보업무 종사자들도 같은 사정이다.
방재기간이 끝나는 10월15일까지는 마음졸이며 대기해야 하는 처지라 휴가는 여느해와 마찬가지로 그후가 될 것이다.
설사 휴가를 갈 수 있다해도 기상대장의 휴가기간은 밝힐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 휴가기간에 맞춰 한꺼번에 떠날 것 아닌가(웃음).
­날씨예보가 틀릴 때도 많던데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리고 우리나라의 예보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하늘의 조화를 인간이 완전하게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기상대의 체육행사나 야유회때 비가 온날이 더 많았고 집을 나서면서 우산을 준비안해 비맞은 날도 많았음을 고백한다.
예보적중률 1백%는 어느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말해 기상예보라는 시험문제는 워낙 까다로워 1백점만점은 어렵고 90점정도만 받아도 거의 만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흔히 우리의 적중률을 85%정도라고 하는데 이쯤되면 1백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94점쯤 된다는 얘기가 된다.
­틀린 예보때문에 욕도 많이 먹을 것 같은데.
▲말도 마라. 예보가 맞을 땐 아무말도 없다가 틀리기만 하면 완전 동네북이다. 하도 욕을 먹어 웬만큼 욕해봤자 꿈쩍도 않는다(웃음).
어느 핸가 김장적기는 11월 하순에서 12월 초순사이가 좋겠다고 한 일이 있는데 12월들어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는 바람에 김장값 물어내라는 욕설전화가 사무실과 집으로 빗발친 일이 있다.
우리집 김치도 시어버려 부하 예보관에게 화를 내고 싶은 심정인데 다른 분이야 오죽 했을까.
­하루의 일기예보가운데 어느 때의 것이 가장 정확한가.
▲하루 네차례 분석해 오전과 오후에 걸쳐 각각 5시와 11시에 새 예보를 내보낸다. 낮 12시 뉴스때의 일기예보는 1시간전 것으로 생생한 정보이나 오후 5시 뉴스때는 6시간전의 예보가 되니 그만큼 틀릴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악기상의 경우는 수시로 각종 특보를 내보내고 있다.
­기상장비의 현대화는 어느정도 진척됐는가.
▲서울 관악산에 하나밖에 없는 기상레이다를 늘려가고 있는 중이다.
기상레이다는 발사전파가 목표물(구름ㆍ비)에 반사된 후 되돌아오는 전파를 수신해 목표물의 위치를 알아냄으로써 집중호우와 태풍ㆍ전선ㆍ저기압 등에 동반되는 강수현상을 원거리에서 탐지,조기예보하기 위한 것이다.
8월초에 제주도,9월에 부산에 설치되며 내년초에는 동해에,그리고 내년말께는 군산에도 설치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전국토와 주변해역을 5개의 레이다 관측권안에 두게돼 태풍이나 집중호우등을 좀더 빨리 알아내 피해를 줄이는 데 기여하게 된다.
지난해 최첨단 기상위성수신장비를 갖춘 데 이어 금년부터는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집중호우등의 이상기상현상을 감시하기 위한 자동기상관측망(AWS)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AWS는 20㎞마다 자동신호처리가 가능한 관측장비를 설치해 풍향ㆍ풍속ㆍ기온ㆍ습도ㆍ강수량 등을 연속 측정하는 것으로 금년까지 1백개 지역에 설치하고 93년까지 매년 1백개씩 모두 4백개를 설치할 예정이다.
­장비도 좋지만 우수한 인력확보도 중요하지 않은가.
▲물론이다. 그런데 기상학은 학문으로는 가능하나 직업인으로서는 어려움이 많다. 현재 2개 대학에서 기상학과 졸업생이 배출됐으나 일이 고된데다 빛도 안나고 대우도 낮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점차 사정이 좋아질 것으로 보이며 최근 4개 대학에서 학과를 신설했기 때문에 우수한 인력확보는 낙관적이다. 현재도 국내대학에서 배출된 기상전공석사의 절반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예보담당요원의 절대수가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중앙기상대의 경우 현재 1조에 10여명씩 3교대하고 있는데 지방까지 합쳐 50명정도만 더 늘려주었으면 한다.
지난번 정밀건강진단에서 요주의자들이 많이 나와 직원들의 건강이 염려스럽다. 시간적 여유를 가진다면 더 좋은 자료를 생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나 중국과 자료교환을 하고 있는가.
▲일본에 있는 지역기상센터(RMC)로부터 인접국가는 물론 세계각지의 기상자료를 받고 있는데 여기에 북한과 중국의 자료도 포함되어 있다.
또 RTY(라디오 텔리타이프)를 통해 북한에서 발사하는 기상신호를 직접 수신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우리는 중국의 자료가 더 필요한 편인데 앞으로 양국간 자료교환문제를 협의할 생각이다.
­끝으로 국민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상은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예보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책임을 회피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날씨문의는 되도록 131번을 이용해 주었으면 좋겠다. 휴일전날 같은 날에는 5대의 전화가 쉬지않고 울려 차분히 자료분석을 해야할 예보관계자들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이다.<신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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