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북핵제재결의] 미, 결의 앞두고 "방사능 탐지" 신속 통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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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8시쯤. 합동참모본부 이성규 정보본부장(중장)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상대방은 주한미군 정보 부서의 책임자였다. 군의 모든 정보 능력이 북한의 핵실험 관련 사안에 집중된 상황에서 걸려온 주한미군 측의 전화는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 인근의 대기를 분석한 결과 방사능 물질이 탐지됐다."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들이 첨단 장비를 총동원해 찾으려 했던 북한 핵실험의 결정적 증거가 포착됐음이 우리 정부에 통보된 순간이었다.

이 본부장은 이 소식을 즉각 이상희 합참의장과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보고했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국정원 등 관계 기관에 긴급 전파됐고,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

이 본부장이 주한미군 측의 전화를 받은 지 10~20분가량 뒤 CNN방송은 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북한 핵실험 관련 방사능 물질이 탐지됐다"는 긴급 보도를 전 세계에 내보냈다. 이후 우리 군 주요 관계자들에게는 핵물질 검출 사실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전해졌다. 국방부와 외교부 등은 북핵 관련 태스크포스팀을 소집해 분석 작업에 나섰다. 미국의 정보 제공 시점으로부터 18시간가량 지난 15일 오전 2시30분쯤 유엔 안보리에서는 북한에 대한 제재 결의안이 채택됐다.

정보 당국자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안 채택을 앞두고 미국이 북한 핵실험의 진위가 논란이 되는 상황을 정리하고 싶어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보다 강력한 대북 조치가 취해지도록 하기 위해 미국이 관련국에 신속히 통보하는 동시에 언론에도 흘렸을 것이란 얘기다.

◆ 어떻게 관측했나=방사능 물질은 미국의 핵실험 탐지.측정 정찰기인 WC-135가 동해 상공에서 탐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측은 북한의 핵실험 발표 이후 일본 오키나와현 가데나 공군기지에서 이 정찰기를 발진시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등 핵실험 추정 지역 인근의 대기를 채취해 왔다. 공중급유기를 개조한 WC-135는 냉전시대 러시아의 핵실험을 탐지하던 미국의 방사능 탐지 항공기 편대 중 유일하게 남은 기종으로 '콘스턴트 피닉스'(불변의 불사조)라고도 불린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포착할 수 있는 특수 필터를 포함한 시스템이 장착돼 있다.

미측은 이 정찰기가 11일 동해 상공에서 확보한 대기 샘플을 실험실로 보내 분석한 결과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물질이 함유됐음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미측이 확보한 방사능 물질의 특성을 정밀 분석해 핵실험의 규모나 위력을 파악하는 데에는 며칠가량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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