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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늘 그 북소리-창작 의욕 돋보인 대작 무대-불의 여행|6월 무용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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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어떤 이유로든 화제와 관심을 불러일으킨 공연이 많았던 6월의 무용계를 돌이켜보며 유독 국립무용단의 『그 하늘 그 북소리』 (6월20∼24일, 국립극장 대극장)와 서울시립무용단의 『불의 여행』 (6월27∼28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 주목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국립국악원 무용단·88서울예술단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국·공립 무용 단체로 꼽히는 이 두 무용단이 앞으로 어떤 성격의 공연 분야에서 그 독자성과 존립 의미를 키워야할 것인지 진지하게 검토해 볼만한 계기를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둘째, 이 무용단들이 잇따라 무대에 올린 대형 창작 무용 작품이 모두 원로 무용가 송범씨나 중견 무용가 배정혜씨의 소외 「야심작」이었다는 점이다.
『그 하늘…』는 지난 73년 국립무용단 창단 이래 무용극이라는 공연 양식에 남다른 애착을 보여온 송 단장이 연임 만료 1년을 앞두고 무용 인생 50년을 총결산한다는 각으로 2년 전부터 준비한 작품·『불의 여행』 역시 서울시립무용단 배 단장이 부임 1년6개월만에 그의 대성공작 『유리 도시』 (87년)를 능가하는 대작을 보여주겠다고 의욕을 불사른 창작 무용이다. 음악·연출 분야에도 국에서 내노라하는 중견 예술인들이 각각 참가한 이 작품들은 여러모로 좋은 대조를 보였다.
호동 왕자와 낙랑공주의 사랑이야기를 사실주의적으로 그린 무용극 『그 하늘…』를 즐비한 한식 뷔페상 차림에 비유한다면 생명의 근원, 현대인의 고뇌, 일상적 체험을 표현주의적 수법으로 보여준 『불의…』은 깔끔한 일품 요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또 『그 하늘…』무대를 누빈 60여명의 수준급 무용수들이 고른 기량으로 작품 구성상의 문제점들을 상당 부분 보완해가며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데 비해 『불의…님에 출연한 50여명 중에는 직업 무용수다운 기본이 다져져 있지 않아 작품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하는 경우가 눈에 띄었다.
『그 하늘…』 첫 부분에서 안무자와 주역 무용수들을 일단 영상으로 소개하며 전개될 내용을 암시한 것은 무용극이라는 극장 예술의 틀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시도라 하겠으나 좀더 세련되게 처리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경사진 무대를 활용해 입체감을 살리고 무대 좌우뿐 아니라 뒤쪽에서도 무용수들이 등·퇴장할 수 있게 배려한 것은 효과적이었다.
박범훈 교수가 작곡한 음악을 중앙국악관현악단이 생음악으로 연주해 현장감을 살렸으며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는 8장에서 흑백의 대비를 이룬 무리들이 낙랑공주의 갈등을 표현한 군무도 볼만했다. 그러나 가화라는 가상 인물을 등장시켜 너무도 잘 알려진 이야기에 변화를 주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춤사위나 표정 (적절치 못한 조명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은 탓도 있을 듯)으로 가화라는 인물의 역할을 제대로 살리지 못함으로써 뚜렷한 인상을 주는데 실패했다.
이 작품이 얼핏 화려하면서도 뭔가 허전하고 산만한 느낌을 주는 것은 과감한 생략과 압축을 통해 주제를 좀더 선명히 부각시키지 못한 경과라 할 수 있다.
『불의…』은 변형된 전통 춤사위로 시각적 이미지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배단장의 강점이 유감없어 발휘된 무대. 무대 막 앞에 나 앉은 임신부를 잠시 비춰준 뒤「절망과 슬픔이 침전된 바다 속」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추상적·관념적·시·적 무용 언어들이 역시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한 조명 및 무대 미술과 어우러져 관객들이 『한국적 현대무용인지, 현대적 한국무용인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이는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장르간의 벽을 넘나들며 오늘의 한국 창작 무용을 만들어내고 있는 무용인들이 다함께 생각해볼 점이라 할 수 있다.
황병기 교수가 만든 무용 음악은 『우리적인 색채를 살리면서도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진 「지구적 음악」을 시도했다』는 그 자신의 표현대로 후반부의 산조 등 확실히 「우리의 소리」로 느껴지는 음악 외에 대자연의 소리. 티베트 승려의 독경 소리, 전자 음향 등을 다채롭게 사용해 탄생 춤·치마 춤·피춤·해골춤·눈가리고춤·꽃춤 등으로 이름들은 독특한 춤사위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그러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고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조명과 무대 미술은 오히려 춤의 효과를 떨어뜨릴 정도로 지나치게 두드러졌다. 무용 평론가 김채현 교수는 『약간의 군더더기를 없애 좀더 깔끔하게 다듬는다면 서울시립무용단의 고정 레퍼터리로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남녀 주역의 춤이 좀더 강조되면 이 작품의 대중적 흥미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처럼 서로 판이한 두 무대를 모두 지켜본 무용인들은 『국·공립 무용단들이 장차 어떤 성격의 작품 활동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할 것인지 근본적인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전제, 이제 그 방향은 단장에 따라 달라질게 아니라 그 설정된 방향에 맞는 무용인을 단장으로 영입해야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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