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안보리 결정 눈감고 따로 노는 열린우리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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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어제 북한에 대한 제재 결의안에 잠정 합의했다. 비군사적 제재 조치를 규정한 유엔헌장 7장 41조에 따라 제재키로 했다. 내용이 미국의 초안보다는 완화됐지만 강력한 수준이다. 북한에 출입하는 대량살상무기 의심 선박에 대해 검문한다. 대량살상무기와 이에 관련된 물자를 북한에 이전, 판매하는 것이 금지된다. 북핵 위기가 한층 고조될 게 자명해 우려된다.

안보리 결의에 따라 가장 주목되는 것은 우리 정부의 대응이다. 일단 정부는 결의안에 따르겠다는 말은 하고 있다. 그러나 집권당을 비롯한 여권 전반의 기류를 보면 제대로 이행할지 강한 의문이 든다. 미국책임론을 거론하는가 하면, 가능한 한 제재 수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PSI)를 위한 국제 공조 참여 확대에 제동을 걸었다. 또 중단 여부를 놓고 미국과 첨예하게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는 개성공단을 방문하겠다고 나섰다. 유엔 결의와 미국에 정면으로 어깃장을 놓겠다는 의도다. 아무리 국제 정세에 어둡다 해도 이렇게 무지할 수 있을까.

정부와 여당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계속 추진할 듯한 입장을 내비치는 것도 큰 문제다. 물론 유엔 결의안이 추상적이어서 중단 여부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 특히 미국은 이 사업을 통해 북한에 들어가는 현찰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사용됐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중단하든, 지속하든 조율된 결정을 내리는 게 정도다. 그런데 미리부터 '지속한다'고 선을 그으면 미국과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 벌써 '한국 정부에 실망했다'는 목소리가 미국 정부에서 나온다니 걱정이다.

결국 이 정권은 말로는 '북핵 불용'을 외치면서도, 속내는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것 같다. 10여 년 동안 북한과 대화를 해 왔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북한이 어떻게 해서든 핵을 보유하겠다는 의지가 이번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또다시 '대화'운운하고 있으니 정말 기가 막힌다.

물론 한반도의 긴장을 과도하게 높일 수 있는 정책 선택은 피해야 한다. 필요하면 북한과 대화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북한의 핵실험은 북한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북한의 핵 공갈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한다. 국지도발을 해놓고 핵으로 위협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대북 유화책은 아무런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남측의 이런 흐물흐물한 태도를 보고 '그래, 핵무기를 포기하자'고 평양지도부의 생각이 바뀌겠는가. 따라서 지금은 '핵실험으로 엄청난 대가가 돌아오고 있다'는 점을 북한이 절실히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런 단호한 제재 조치를 취한 후 대화를 해도 늦지 않고, 그래야 대화 가능성도 더욱 높아진다.

지금 북한은 한국 정부는 안중에도 없다. 핵실험과 관련해 발표한 성명의 수신처는 오로지 미국 아닌가. 사정이 이렇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우선 북한 핵문제를 남북 간, 민족 간의 차원에서 다룬다면 결코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핵은 이미 유엔안보리가 개입한 '국제정치'다. 따라서 미국과의 완벽한 공조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이것이 무너지면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다. 여권은 우리 안보가 절체절명의 시점에 왔다는 점을 다시 한번 명심하고 위험한 발상에서 벗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