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진홍의소프트파워

북핵 위기의 본질을 보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지난 9일 북한의 핵실험으로 야기된 위기에 대해 미국 책임론이 제기되는 것을 보면서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에 대한 수정주의적 관점의 전통이 이번에는 북핵 위기에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미국이 압박하고 몰아세운 결과'라는 주장의 발원지는 도발 당사자인 북한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우리 내부에서조차 진보좌파 진영은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미국 책임론을 이구동성으로 언급하고 있다.

작금의 북핵 위기는 그 명백한 책임이 북한의 핵실험 강행이라는 도발에 있지 미국의 협상실패나 전략적 유인에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만약 미국의 실책을 거론할 일이라면 그에 앞서 포용정책의 실패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포용정책의 기반은 상호 신뢰와 호혜의 원칙이다. 그리고 그 기대효과는 중국식 개혁개방에 준하는 북한의 개혁개방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은 남북 간의 상호 신뢰가 전무함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북핵은 자위권 성격이 강하며 관리 가능한 것이라고 말해왔던 노무현 대통령마저 망치로 뒤통수를 가격당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김대중 정부 이래 지난 8년여의 포용정책은 호혜적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민망할 만큼 일방적인 퍼주기였음은 삼척동자도 안다. 아울러 우리가 아무리 퍼부어도 북한은 개성과 금강산이라는 최소한의 '현찰 수금 창구'를 제외하곤 더 이상 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보낸 쌀과 돈과 시멘트가 미사일과 핵과 조롱이 되어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 이것이 포용정책의 실패가 아니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침몰하던 닛산을 구해내 일본 최고의 경영자 반열에 오른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 아마추어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진정한 프로페셔널은 문제를 단순화시킨다." 그렇다. 위기를 타개하려면 단순해져야 한다. 단순해진다는 것은 사태의 표피가 아니라 본질을 보고 그것에 곧장 파고드는 것이다. 그래야 해결점이 나오고 돌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고로 진정한 리더는 위기일수록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해법을 단순화한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북핵 위기보다 더 큰 위기가 실은 리더십의 위기임을 절감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위기 앞에서 어쩔 줄 몰라 문제를 더 복잡하게만 만드는 아마추어의 전형처럼 보였다. 대통령이 연일 애매모호하게 이중.삼중으로 비틀어진 언어를 반복 구사한 것도 위기 대응의 방향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며 헤매고 있다는 방증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이럴수록 우리 국민은 이 위기를 기어코 돌파해야만 한다. 미국의 책임 운운하며 북핵 위기를 물타기할 때가 아니다. 이미 최소의 존립기반마저 상실한 포용정책을 명분 삼아 정치게임할 때도 아니다. 위기의 본질을 분명히 보고 사즉생의 결단으로 온 국민이 대결을 각오해야 할 때다. 대결을 각오해야 우리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안전과 평화마저 지켜낼 수 있다는 역설을 이제는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