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대(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 87년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동부의 주요신문과 연극전문지들은 이례적으로 30년전에 공연했던 한 작품에 대한 특집기사를 일제히 실어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 작품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우리에게도 낯이 익은 50년대말의 인기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였다. 제럼 로빈스가 안무를 맡고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한 이 뮤지컬은 푸에르토리코출신의 이민 청소년들과 이탈리아계 청소년들의 사랑과 갈등을 그린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당시 신문과 잡지들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가장 미국적 뮤지컬이라고 평가하면서 『지난 한 세대동안 이만한 작품이 다시 나오지 않는 것은 섭섭한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성공은 두가지로 집약된다. 첫째는 당시 대부분의 뮤지컬 소재가 현실을 외면한 도피성 애정물이었던 것에 비해 이 작품은 뉴욕 뒷골목의 생태를 깊이있게 파헤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
둘째는 뮤지컬 전체를 통해 흐르는 멜러디가 관객의 귀에 금방 친숙해져 콧노래로 따라 부를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뮤지컬은 관객이 관심을 갖는 재미있는 소재에 솜사탕처럼 달콤한 멜러디,짜임새 있는 율동,그리고 화려한 의상과 무대장치ㆍ조명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이른바 총체예술(total art)이다. 물론 노래와 촘솜씨가 뛰어난 탤런트들이 없으면 뮤지컬은 성립될 수가 없다.
그 뮤지컬이 60년대초 예그린 악단을 통해 우리나라에 선을 보인 이후 한대 잠잠하더니 80년대에 들어와 급격히 수요가 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가씨와 건달들』같은 작품은 83년 초연된 이래 9백여회의 공연횟수에 6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우리 연극계에도 바야흐로 뮤지컬시대가 도래한 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이같은 히트 뮤지컬의 대부분이 브로드웨이를 거쳐 들여온 「수입품」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우리의 정서를 담은 우리의 이야기에 우리의 선율과 율동으로 관객의 흥을 돋우는 그런 뮤지컬 출현이 기다려지는 시기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6ㆍ25 40주년기념으로 지난 18일부터 28일까지 7개 도시순회공연을 가져 큰 반응을 일으킨 88서울예술단의 뮤지컬 『한강은 흐른다』의 서울공연(4∼8일)은 우리의 관심을 모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