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없는 목표(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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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 농부가 아들에게 밭 가는 일을 시켰다. 얼마뒤 아버지는 밭일이 궁금해 나가보았다. 아들이 갈아 놓은 밭이랑은 꾸불꾸불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밭 이랑을 곧게 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밭 저편에 있는 어떤 목표를 보고 이랑을 내면 똑바로 곧아 진단다.』 한참뒤에 밭에 나가본 아버지는 또한번 실망했다. 밭이랑은 여전히 굽어 있었다.
꾸중을 듣고난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버지 말씀대로 밭너머 저쪽에 있는 소를 목표로 하고 밭을 갈았어요.』 그 소는 밭 저쪽에서 어슬렁 어슬렁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B W 빌링즈라는 사람이 쓴 책에 나오는 얘기다.
이런 얘기도 있다. 갈매기와 곤들매기와 가재가 짐실은 수레를 끌고 있었다. 모두를 땀을 뻘뻘 흘리며 잡아 당겼다. 갈매기는 구름을 향해,곤들매기는 물속으로,가재는 뒤로 수레를 끌었다. 그러나 수레는 그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크르일로프의 우화다.
농부 아들의 밭 가는 얘기나,제자리에서 꼼짝않고 있는 수레의 우화는 어쩌면 어느 나라의 경제현실과 그리도 같은가.
언제는 「성장 우선」의 경제정책을 펴나간다고 하더니 몇달이 안돼 지금은 「안정 우선」 정책으로 선회했다. 한쪽에선 농산물값이 올라 농민들은 걱정을 덜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다른 한쪽에선 값오른 품목은 수입이라도 늘려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총체적 난국」 소리를 들은 것이 엊그제인데 어느새 경기가 과열돼 찬물을 끼얹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옆에서는 지금 건설 경기에 물을 뿌리면 또다시 부동산 파동이 일어난다고 고개를 흔든다.
지금의 경제팀이 들어선지 1백여일. 그동안 발표된 특별대책만해도 서너가지가 넘는다. 4ㆍ4경제활성화대책으로부터 부동산투기 억제대책,물가안정대책,대기업 투기억제 특별대책등 큼지막한 것만해도 이 정도다.
그러나 「경제」라는 수레는 여전히 제자리에만 머물러 있다. 아니,하반기 경제운영계획을 보면 오히려 수출목표는 줄여 놓았다. 경상수지목표도 당초 흑자에서 적자로 뒤집어 놓았다. 올려야 할 것은 내리고,내려야 할 것은 올리는 목표도 목표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목표는 원래 이상과 의욕과 의지,그리고 집념을 담아 설정하는 것 아닌가.
우리 경제의 진짜 걱정은 바로 나침반 없는 목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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