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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처리 공정성 아쉽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최근 미국의료계에서 「구급차 추적자(Ambulancechaser)」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소송할 수 있을만한 의료사고를 찾아다니며 환자와 그 가족들을 충동질하는 변호사들을 이르는 말로 이들은 능숙한 변론으로 의사들의 과실을 입증해 배상금을 받아낸다. 그리고 법정수수료로 배상금의 3분의1을 받고 있다.
최근들어 미국에서는 걸핏하면 의사들이 소송을 당한다. 과거 40년동안 환자가 의사를 소송한 예의 80%가 지난 5년동안 발생했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의료사고를 관대히 봐주는 분위기가 아니여서 환자들이 승소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에서 의사들이 수난을 당하는 경우와 달리 국내에서는 의료사고가 환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경향이 있어 말썽을 빚고 있다.
최근 대검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87∼89년 의료사고로인한 업무상과실치상으로 피소된 의사 4백13명중 검찰에서 무혐의로 처리된 인원은 82.6%인 3백41명이라는 것.
또 같은 기간중 업무상과실치사로 피소된 의사는 4백9명이었는데 이중 78.7%인 3백22명이 무혐의로 처리됐다.
이는 일반 업무상과실치사·치상 사건의 무혐의율 36.2%에 비해 2∼3배가량 높은 수치다.
검찰뿐만아니라 재판과정에서도 이런 경향이 나타나 지난 56년부터 금년까지 의료사고에 관한 형사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재판받은 총19건 가운데 9건이 유죄로 처리돼 유죄율이 47.4%였다. 이는 일반형사사건 유죄율 95%에 비해 절반밖에 안되는 매우 낮은 수준.
이처럼 다른사건과 달리 의료사고의 경우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것은 피해자들이 의료분쟁을 형사사건화해 고소를 함부로 하는 이유도 있지만 의료사고에 대한 입증체계가 불완전하고 검찰·법원이 의료인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의료사고의 원인을 입증하는 감정인제도가 제대로 정착돼있지 않아 전문적 감정이 어렵다는 것.
고려대의대 문국진교수(법의학)는 『대부분 감정인들이 주업은 따로 있고 부업으로 감정업무를 하고 있다』고 밝히고 『선진국들과 같이 감정인의 신분을 법으로 확실히 정해 전문적이고 자질있는 전문감정인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교수는 또 의료분쟁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의학의 여러분야 전문가로 감정인단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의료인들 특유의 동료의식(?)도 공정한 감정을 저해한다는 것. 즉 감정인 자신도 의사인지라 피소된 동료 의사의 잘못을 낱낱이 밝혀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게 한국의료풍토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는 의료계의 자정운동과 의료민주화로 극복할 부분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또 검찰·법원등이 의료사고의 처리에서 의료인들에게 너무 관대했다는 지적도 있다.
의료사고를 너무 엄격히 처리하면 의학발전과 건전한 의료행위가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과 같이 무혐의율이 매우 높을 경우 제도권 밖에서 의료분쟁이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국내 의료사고가 소송·조정등을 통하지않고 제도권 밖으로 번져 의료분쟁을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 사실.
정부는 85년 의료분쟁을 행정제도권 안에서 흡수하기 위해 보사부와 각시·도에 의료심사조정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고 있지만 5년동안 접수된 건수는 총7건에 불과하다. 이같은 정부조정능력 완전실패는 의료사고를 둘러싼 피해자들의 정부불신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경기대 석희태교수(법학)는 『의료사고의 처리는 소송등으로 확대되기 전에 조정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고 밝히고 조정위원회의 활성화를 강조했다. <이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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