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끝없는 청와대의 인사 외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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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 정부의 낙하산 인사 잡음이 끝이 없다. 감사 선임을 놓고 4개월째 파행을 거듭한 증권선물거래소는 급기야 후보추천위원장이 외압을 견디다 못해 전격 사퇴했다. 위원장을 그만두면서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잘 봐달라'는 전화를 수차례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법과 원칙은 물론 양심에 따른 공정한 후보 선출이 불가능해 사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거래소 감사 논란은 노조가 7월 "청와대가 지방선거 때 강금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일한 부산지역 386 출신 김모 회계사를 낙하산 내정했다"고 주장하며 불거졌다. 문제가 커지자 정부는 김모 카드를 슬그머니 접고, 이번에 또 다른 인사를 추천했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권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감사 문제로 시끄러울 때 언론이 파고드니까 청와대가 조금 비켜있다가 최근 다시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거래소 감사를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와준 부산지역 시민단체의 몫으로 간주하고 있다"고도 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거래소는 증권사들이 주주인 민간주식회사다. 제대로 된 나라치고 민간기업 인사에 정부가 이런 식으로 개입하는 곳이 어디 있는가. 게다가 거래소 수입은 투자자들이 내는 매매수수료의 일부를 떼 충당한다. 이 돈을 어떻게 쓰는지 감사하는 자리를 자격도 불분명한 낙하산으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거래소뿐 아니라 정부의 입김이 닿는 곳은 어김없이 낙하산 인사로 채워지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갈수록 노골적이다. 정부 관료들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386 인사들과 적당히 자리를 나눠 먹고 있다. 이들에게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일인지 모르지만, 월급을 대야 하는 국민은 복장 터질 노릇이다. 이 정부 들어 공기업 감사 연봉이 2.8배나 올랐으며 문제가 된 거래소 감사의 연봉도 4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인사청탁을 하면 패가망신(敗家亡身)한다'던 이 정부의 공언대로 인사 때문에 패가망신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