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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亡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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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리스도교에서의 양(羊)은 인류를 대신해 속죄한 구세주 예수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때로는 선한 목자(牧者)에 이끌려 구원의 길로 가는 신도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에 비해 동양에서의 양은 철리(哲理)나 인생의 길을 일깨우는 탐구적 대상물로 흔히 사용된다. '장자(莊子)'에는 '잃어 버린 양(亡羊)'의 이야기가 나온다. 함께 양을 키우던 장(臧)과 곡(穀)이라는 사람은 각각 양을 잃는다. 장이라는 이는 독서에 열중하느라, 곡이라는 사람은 도박에 힘을 쏟았기 때문이라고 장자는 설명한다. 그들이 잃은 양은 '본성'과 '본업'이다. 외양의 재미에 빠지느라 자신의 성정을 잊은, 본말이 도치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장자의 비유다.

춘추전국 때의 철학가 양주(楊朱)도 양을 두고 생각을 다듬었다. 양 한 마리를 잃어 버린 이웃이 모든 사람을 동원해 양을 찾아 나선다. 양주 집의 하인까지 불러내 양을 찾지만 결국 빈 손으로 되돌아 온다. 양주는 그 이웃에게 "그리 많은 사람이 나서서 양 한 마리를 왜 못 찾았는가"라고 묻는다. "갈림길은 다른 갈림길로 계속 이어져 있어서 결국 찾지 못했다"는 대답을 듣는다.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할 경우 목적지에 제대로 도달할 수 없다는 뻔한 이치 앞에서 양주는 오래 침묵한다. '기로망양(岐路亡羊)'이란 고사성어의 유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말은 한국에서 잘 쓰인다. 중국에선 '양 잃고 외양간 고치기(亡羊補牢)'라는 말이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의 용례에 비해 중국의 것은 좀 더 긍정적이다. '전국책'에 나오는 원문은 '토끼를 발견하면 사냥개를 돌아보게 되고, 양을 잃고 나면 외양간을 손질하니 이는 늦은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이다.

오랫동안 아슬아슬하나마 유지됐던 한반도의 균형이 북 핵실험 한 방으로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자칫 예측하기 힘든 북한의 행태로 더 심각한 위협에 놓일지 모를 운명에 처하게 됐다. 추가 핵실험까지 예상되고 있으니 사정은 더 그렇다.

망양의 고사(故事)를 돌아보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개혁과 자주에 앞서 국가의 안정과 번영이라는 본업에 충실할 사람은 대통령이겠다. 위정자(爲政者)들은 국력을 흐트러뜨려 단합된 힘을 북한의 도발 앞에 내세우지 못하는 '갈림길 정치'를 지양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좀 더 튼튼한 목재와 시멘트로 외양간을 손질해 나머지 양들을 지켜내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겠다.

유광종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