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아니면 전무」는 안된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임시국회 맞아 여야에 보내는 당부
산적한 현안을 두고 여야간 이견만 팽팽한 가운데 제150회 임시국회가 문을 열었다. 한가닥 기대를 모았던 청와대 여야 총재회담마저 서로 이견만 확인했을 뿐 돌파구를 열지 못했다.
여야간의 이런 대사속에 석달만에 열린 국회가 과연 무슨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처음부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정국이 이지경이 되도록 그동안 성의있는 절충이나 협상 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은 여야의 무성의ㆍ무책임한 자세를 새삼 질책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임시국회는 13대 국회로서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 분명하다. 거여소야로 재편된 후반 2년의 13대 국회가 그런대로 통상적인 국회 구실을 해내느냐,아니면 사사건건 여야 대립으로 정국표류와 거여독주로 가느냐의 판가름이 이번 국회에서 내려질 것이다.
만일 각종 현안에 대한 여야이견을 지금처럼 계속 해소하지 못한다면 13대 국회의 남은 운명은 거의 뻔하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여권의 내각제 개헌 추진이 공식화하고 여기에 야권이 총력 저지로 나선다고 할때 13대 국회의 남은 임기중 통상적인 국회기능은 거의 절망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런 뻔히 보이는 암담한 정국 전개를 여야가 무위무책으로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보며 그런 코스를 피하기 위해서도 이번 임시국회는 정상운영돼야 한다고 믿는다.
먼저 여야는 이번 국회가 처리해야 할 각종 현안의 중요성부터 다시한번 되새겨 보길 바란다.
이번 국회에는 지자제실시를 위한 지방의원선거법,보안법,안기부법,남북교류특별법,광주문제보상법… 등 그동안 여야의 무능으로 방치돼온 수많은 현안들이 쌓여있다. 가령 광주관계법 하나만 보더라도 여야 어느쪽의 잘잘못을 떠나 10년이 넘도록 피해자를 위로할 아무런 조치 하나도 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여야는 무슨 말로 변명할 것인가.
정치문제든,정책문제든 여야가 이견을 보이는 것은 좋다. 그러나 접점을 찾지 않고 이견을 이견대로 무작정 방치하는 것이 정치일 수는 없다. 여야는 더이상 정치를 포기해서는 안되며 이번 국회에서는 정치를 재개해 쌓여있는 현안을 반드시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 늦어질대로 늦어진 각종 중대현안들을 이번 국회에서 마저 처리못한다면 여야의 정치력은 파산된 것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도 현안에 대한 여야의 전면적 합의가 어려운 것은 잘 알지만 그나마 국회의 생산기능을 살리기 위해 다음 몇가지 방안을 여야에 권고하고자 한다.
첫째,문제의 단계적 해결을 모색하라는 것이다.
지자제의 경우 정당추천제 여부를 놓고 맞서있지만 전반적 정당추천제 또는 획일적 정당배제로 대립만 할 게 아니라 기초자치단체인 시ㆍ군ㆍ구의회선거는 정당배제로,광역자치단체인 시ㆍ도의 경우는 정당추천제를 하는 방식으로 절충해 보라는 것이다. 또 보안법문제도 개정보류와 폐지로만 맞서지 말고 이번에 문제수항을 고치고 앞으로 2단계 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둘 수도 있지 않겠는가.
둘째,대외문제와 민생문제는 당략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이미 북방외교의 초당적 대처에는 합의를 봤지만 추경예산안ㆍ부동산투기ㆍ근로계층의 탈경감 같은 민생문제도 정책 자체의 타당성 여부에만 초점을 두고 이를 다른 정치문제와 연계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셋째,상임위원장 감투싸움을 즉각 중지하라는 것이다. 감투 하나를 더 내라,못낸다로 벌이고 있는 여야의 싸움은 더이상 눈뜨고 보기 어렵다. 이런 문제로 국회운영이 지장을 받는다면 국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야가 이번 임시국회를 끝내 정치게임의 무대로만 삼을 것인지,그런대로 국민을 위한 국회로 운영할 것인지 냉철하게 주시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