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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트촬영의 대상 김기영감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서울대 의과대학 의사 출신의 김기영(1919년생)은 조감독경력이 없는 이색감독이다. 부산피난시절 대학병원 의사로 근무하고 있을때 평양고보 선배인 오영진으로부터 보자는 전갈이와서 갔다.
오영진은 폐결핵에 영양부족으로 앓고 있었다.
공보부 제작영화 『정의의 진격』각본을 썼던 오영진은 대한뉴스 1, 2, 3, 4, 5호의 제작청부를 맡고 있었다. 나는 건강이 나빠 못하겠으니 네가 하라는 것이었다. 김기영은 영화경력은 없었지만 연극 경력이 프로였기 때문이다.
김기영은 해방직후 평양 거주 의과대학생들을 규합, 극단「세난」을 창설, 비드락의 『상선테나시티』를 연출해 소련군 고급장교들을 놀라게 했었다. 의사피아니스트 정진우도 멤버였다. 오영진은 그당시 북한의 국립영화촬영소장이였다.
즉시 월남한 김기영은 의대재학중 「국립서울대학극장」을 창설, 연출자로 공연활동을 한다. 작가교수 전광용, 배우 박암, 화가 장운상등이 멤버였고 후배로 이순재·이낙훈등이 배출된다. 세브란스의대 연극부와 연합학생극단 「고려예술좌」를 창립, 입센의 『유령』을 중앙극장에서 공연, 그 연출이 평가를 받아 전국공연을 하기도 했다.
영화계에서는 지금도 세트촬영엔 김기영을 당할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는 연극할 때부터 세트 디자인을 직접 했었다. 그는 조명을 완벽히 구사할수 있는 것이 세트 촬영의 강점이라고 말한다. 연극에서 영화로 들어간 감독이다.
대한뉴스 5편을 만들고 녹음하려니까 녹음할데가 없다. 녹음시설은 미국공보원(USIS)만이 있었는데 사용을 거절하며 안빌려줬다. 떼를 써서 어찌어찌 들어가 했다. 그가 만드는 대한뉴스를 보고 있던 미국공보원측은 월급 5만원을 줄테니 와서 리버티 뉴스를 만들어달라고했다. 그가 받던 대학병원 의사 월급은 3천5백원이었다.
김기영은 5년간 리버티뉴스와 각종 문화영화수백편을 만든다. 그의 영화제작기술의 기초는 이렇게 다져졌다.
그는 드디어 극영화 『주검의 상자』(54년)를 연출, 감독데뷔한다. 『주검의 상자』는 그가 일하던 미국공보원이 제작한 반공영화였다.
남원의 어떤 절에서 전사한 아들의 제사를 지내고 있으니까 국군 복장을 한 공산게릴라가와서 아들이 살아있다고 말해 제사가 이상해지는 얘기였다. 최무룡·강효실·노능걸등이 이영화로 데뷔했다. 스카라 전신인 수도극장에 걸었는데 흥행이 잘되어 의의로 많은 배당금을받았다.
김기영은 배당금 전액을 오영진에게 준다. 오영진이 자기를 불러 대한뉴스를 만든 것이 계기가 되어 영화감독으로 입신,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오영진은 그돈으로 신당동집을 산다. 훌륭한 2층집으로 필자도 가본 적이 있다.
김기영은 데뷔작이후 직접 영화사를 설립, 제작·각본·연출을 한다. 김기영은 그후 쩍하면 새영화사를 설립해 자기영화를 만드는데, 그것이 3∼4개사쯤 되고 현재도 유성영화사를설립, 윤여정주연의 미스터리 『내몸은 창백한 샹들리에』를 제작·각본·연출하고 현재 음악 녹음을 하고 있다.
제 2자『양산도』(55년)를 준비하고 있는데 소문을 듣고 김승호가 찾아온다. 김승호는 『자유만세』에 잠깐 나간적이 있으나 내내 연극을하고 있었다. 그 무렵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극단은 해산했다. 김승호가 출연하고 싶어하니까 『양산도』의 다른 스태프들이 반대했다. 제멋대로이고 두통거리라는 것이다. 김승호의 연기에대한 열의는 지금은 전설적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그와함께 일한 적이 있는 동료들중엔 그것을 제멋대로라고 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김기영은 올해 72세가 되지만 지금도 대화하면 순진하기 짝이없는 어린애같다. 예술가들에게서나 볼수있는 순수인으로 보인다. 김승호에게 정말 열심히 하겠느냐고 했더니 그러겠다고해서 여주인공의 아버지역을 맡겼다.
남한산성 로케현장에 같이 묵고 있으려니 어머니가 위독해서 가서 돌봐야 한다고 갔다 오겠단다. 그때는 교통이 불편했다. 그래서 와도 그만, 안와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갔다 오라고 했더니 정확히 촬영시간에 대왔다. 그의 실질적인 영화데뷔가 되며 그후 인기상승한다.『황혼열거』(57년 )에서는 김지미가 데뷔한다. 필자도 대단히 예쁜 여자가 나온다고 그당시영화평 꽁무니에 한줄 썼었다. 김기영감독이 명동거리에 서있다가 지나가는 그녀를 발견했던 것이다.
임영(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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