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결국 남북한에 달렸다/한반도문제 동경 국제학술회의 참관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주변국은 「여건조성역」인식/불참해온 북한,조총련서 대리참석 눈길
지난 8,9일 이틀동안 일본 동경에서 열렸던 「제6회 한반도 통일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주최 환태평양연구소ㆍ소장 김정명)은 최근 국제정세 아래서의 남북한문제에 대한 관련 각국 학자들의 인식과 관점을 한자리에서 접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이번 심포지엄에는 이제까지 한번도 초청에 응하지 않았던 북한이 조총련학자들을 대리참가시켜 주목을 끌었다.
주최측 김정명소장에 따르면 지난해 9월에 보낸 초청장에 대해 북한측은 지난 1월 「조선문제에 대한 6개국 회의는 적절한 회의형식이 아니다」며 참가를 거절했었다.
이에 주최측은 초청된 나라가 결코 남ㆍ북한ㆍ미ㆍ일ㆍ소ㆍ중국 등 6개국만이 아니며 한반도문제에 관심이 있는 세계 모든 나라의 학자들이 초청되었음을 알리고 다시 참가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북한측은 회답을 하지 않다가 지난 5월17일∼19일 워싱턴에서 열린 아시아관계 국제회의에 참가했던 최우진 평화군축연구소 부소장과 이형철연구원을 귀국길에 참가시키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해왔다.
그러나 끝내는 「시간제약등의 문제」로 참가가 불가능하다고 통보했지만 그대신 조총련의 조선문제연구소 관계자 3명을 대리로 참석시키겠다고 알려왔다는 것이다.
우리와는 달리 북한의 경우는 국제학술회의 참가도 국가정책적 고려에 의해 결정되는 점을 감안할때 이러한 대리참가도 하나의 「변화」라 할 수 있다. 급격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외부세계로의 출구를 찾기위해 북한이 나름대로 고심하고 있음을 여기에서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같은 북한측의 고심은 지난 5월31일에 발표된 최근 북한의 새 군축안에 대한 설명에 나선 신희구소장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설명이 「공화국의 뜻을 받고」하는 것임을 전제한뒤 새 군축안이 한소 정상회담을 포함한 최근의 국제정세를 두루 고려한 것이며 「새로운 정책전환」임을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해주기를 거의 호소하는 듯한 투로 말했다.
그는 그동안 군축문제에 있어 쟁점이 되어왔던 것이 군축회담의 협상당사자를 누구로 하느냐 하는 것과 선군축 후신뢰구축이냐,선신뢰구축 후군축이냐 하는 것이었는데 이번 새 군축안에서는 「남쪽 당사자」와의 회담을 제안하고 있고 신뢰구축방안도 먼저 내세우고 있으니 「새로운 진전」이라고 봐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북한학자가 워싱턴 아시아관계 국제회의에 참가한 것도 정책전환의 일환이라면서 이번 군축안을 이 새로운 국면조성의 노력이라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그러나 회의에서 서울대 하영선교수는 『북한의 새 군축안이 83,87년의 안에 비해서는 유연성이 있고 군사적ㆍ법적 측면에서는 신뢰구축적인 내용이 있으나 정치적 신뢰구축안이 결여되어 있다』고 평가했으며 극동문제연구소 강인덕소장은 『불확실한 것이 많다』고 비평했다.
한편 전반적인 남북한문제에 관한 각국 학자들의 견해는 한마디로 백가쟁오이었다. 이는 한반도의 통일문제가 최근 국제정세의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허다한 견해차이와 이해의 대립이 가로놓인 난제임을 새삼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견해가 엇갈리는 가운데서도 동서를 가릴 것 없이 외국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것은 「통일문제는 기본적으로 남북한의 문제」라는 점이었다. 관련된 나라들이 여건을 조성하는데는 기여할 수 있으나 결국 통일은 남북한 스스로가 이룩해야 하며 관련 나라들의 이해가 어떻든 남북한이 받아들인 안이라면 주변국들도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견해들이었다.
구체적인 통일의 방식도 독일식도,중국식도 모델이 될 수는 없고 역시 독자적인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지고보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나 우리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분단반세기에 가까운 오늘날까지 외국인들로부터 그런 지적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한소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국내 언론들의 들뜬 반응과는 판이했다. 오히려 참가자들은 한소관계의 급속한 진전이 가져올 부정적 영향을 우려했고 한소간의 연내 국교 수립도 지나치게 성급한 기대이며 또 그래서도 안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사르키소프 소 과학아카데미 동양학연구소 일본 연구센터소장은 개인의 의견임을 전제,한소 국교수립은 자칫하면 남북한의 균형을 파괴해 한반도에 불안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견해는 중국ㆍ일본으로부터의 여러 참석자들로부터도 나왔다. 예를 들어 미 조지워싱턴대의 김영진교수도 한소 관계의 진전이 장기적으로는 남북관계 개선을 촉진할 수 있으나 당장은 남북간에 긴장을 조성할 가능성이 크고 북한­중국간의 관계를 더욱 긴밀히 만듦으로써 한­중국 관계개선에도 견제작용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르키소프 소장은 외부세력은 여건을 조성하는데 그쳐야 한다면서 최근 한소간의 경제ㆍ문화적 교류는 그런 면에서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간은 빨리 흐른다」는 말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진 않으면서 교차접촉→UN 동시가입→교차승인→연방제→통일의 코스를 제안했다.
사르키소프에 대해선 조총련 조선문제연구소 이남주연구원으로부터 한소 정상회담을 북한에 알리지도 않은 것은 북한을 무시한 것이며 그런 소련의 자세가 어떻게 남북 관계개선에 기여할 수 있겠느냐는 항의성 질문이 나왔고 이에 대해 사르키소프가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하는 막간극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회의에서도 한반도문제 해결의 핵심은 남북한관계의 진전에 있으며 주변국과의 관계개선도 그것이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언정 충분조건은 될 수 없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주변국과의 관계개선도 결국 남북관계와 함수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서는 물론,주변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서도 비록 작은 변화라 할지라도 북한이 보이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진취적인 자세가 우리에게 요구됨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유승삼 본사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