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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뚝떨어진 동구 록음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동구권 자유화 물결의 상징이자 척도였던 동구젊은이들의 록음악에 대한 열광이 급격히 수그러들고 있다.
공산정권이 건재하던 때에 젊은이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비틀스와 펑크·뉴웨이브·헤비메탈 음악등에 대한 열광으로 표출되었으나 동구가 정치적 격변을 겪으면서 누구나 손쉽게 록음악을 즐길수 있게 되자 오히려 대중들은 록음악을 외면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은 록음악이 전과 달리 상업성에만 매달리기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있다. 통제사회에 시달려온 젊은 세대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던 일종의 「금단의 열매」였던 록음악을 이제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자 누구도 이에 비싼 값을 치르며 매달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서구식 록음악의 퇴조가 특히심한 곳은 폴란드.
폴란드에서 최고 인기를 얻으며 2백만장의 레코드 판매기록을 세우기도 했던 그룹 퍼팩트의 리더 즈비그뉴 홀디스는 『폴란드에선 이제 록은 죽었다』고 단언하고 있다. 수천·수만명의 젊은 록 팬들을 집결시켰던 크고 작은 공연장들은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컴퓨터 박람회장이나 꽃시장등으로 속속 바뀌고 있다. 또 광적인 팬들을 몰고 다니며 최고 인기를누리던 록 그룹들은 이제 서커스 쇼에서나 찬조출연으로 공연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동구에서의 록음악 인기하락은 가장 먼저 개방과 자유의 물결이인 폴란드에서 비롯돼 동베를린·프라하등을 포함, 소련전역에 이르기까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레닌그라드의 세계적인 언더그라운드 록그룹 아카리움은 최근 미국CBS사와의 레코드 취임계약과 관련, 멤버들간에 금전적 마찰이 생겨 해체되고 말았다.
아카리움의 해체는 순수한 예술성과 독재에 대한 반항의식을 추구하던 수준높은 록그룹이상업주의에 물들어 몰락하게된 대표적 케이스로 지적되고 있다. 소련내에서는 『KGB가 70년대 10년동안 공작을 벌였으나 실패한 아카리움의 해체가 미국의 한 레코드사에 의해 9개월만에 이뤄졌다』는 말이 유행하고있다.
동베를린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동독의 대표적인 뉴웨이브 그룹인 판코브의 경우 처음엔 마약중독·인간소외·공해등 사회성 짙은 주제로 인기를 끌었으나 통독의 열기가 일기 시작한 지난해 10월부터 갑자기 외면당하다 최근 결국 팀을 해체하고 말았다. 이 그룹의 리더이자 잘생긴 용모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보컬리스트인 앙드레 헤르츠베르크는 『약간의 공백기간이 필요하다』며 『영화쪽으로 눈을 돌려야 할것같다』고 피력, 최근 자본주의 물결에 밀려 동구의 대중음악도 완전히 서구화되었다는 사실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체코의 앙팡 테리블로서 정부를 자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그룹 프라하 셀렉션의 리더 마이클 코캅은 시민포럼에 참가, 음악활동을 정리하고 바츨라브 하벨이 집권하자마자 의회에진출했다. 형가리에서도 매달 평균25회정도 열렸던 록 콘서트는 약10회 수준으로 감소되었고 그나마 객석은 반도 채워지지 않고있다.
다만 루마니아에서만은 예외적으로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몰락할 때까지 누리지 못했던 대중음악의 자유를 향유하느라 뒤늦게 큰 붐을 일으기고있을 따름이다.

<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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