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본사 특별취재팀 50일간 현장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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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직업적으로 개를 10여마리씩 끌고 보도와 공원등을 걷고있는 「개 운동시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된다.
호화 아파트에 사는 부자들이 개까지도 돈을 들여 운동과 산책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엿한 직업(?)으로까지 자리잡은 「개 운동 조련사」들은 월 한마리에 20달러씩을 받고매일 2∼3시간씩 부자집 개들을 산책시켜주고 월수 2백달러 이상을 올리는 고액 소득자다.
아르헨티나의 근로자 최저임금이 80달러선이고 가정부들의 월급이 40∼50달러인데 비하면확실히 이들의 월수입은 아주 높은 것이고 실제로 대학교수 월급 수준이다.
중남미에서는 이같은 호사스런 부자들의 수가 아주 많아 거부의 수가 적고 따라서 일반인의 눈에 쉽사리 노출되지 않는 유럽이나 아시아와는 달리 눈에 쉽게 띈다.
그러니까 중산층이라는 것은 아주 미미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으로 경제사회구조가 일분돼 있음을 외국인 여행객들도 쉽게 확인할 수있다.
물론 못사는 사람이 훨씬 많은게 현실인데 그 못사는 정도란 기본 인간생활에도 훨씬 못미치는 눈물겹도도 참담한 가난이다.
안데스산록에서 농사를 짓는 인디오들과 도시빈민촌사람들은 나서 죽을 때까지 의사를 한번 구경도 못하기가 일쑤고 중남미 대도시들의 변두리에는 흙벽돌집에 몇가구씩 세들어사는이른바 빈민촌이 2만여개에 달한다.

<의사 구경도 못해>
또 멕시코의 많은 근로자들과 농민들은 1달러면 한사람의 1주일분을 사는 주식인 따꼬의 외피(밀 또는 옥수수 가루로 만두피처럼 만들어 놓은 것)만을 사서 구어먹고 원래 그속에 넣어야할 고기와 야채는 엄두도 못내는 굶주림의 삶을 살고있는 현실이다.
물론 대부분의 중남미 부호들은 록폘러나 카네기등 세계적인 거부들과 견주어볼 때 재산의 규모나 지명도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주거환경을 비롯 생활양태는 세계적 거부들에 비해 손색이 없을 만큼 일반인들의 범접을 불허하는 초호판임에 틀림없다.
대도시속의 부자촌은 일반서민의 이주를 원천적으로 허용치않을 뿐아니라 사설경비원들을입구에 배치해 일반인들의 접근마저도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다.
수영장은 말할 것도 없고 테니스장에 인도어골프장, 야외연회를 위한 파티장등 각종위락시설을 갖춘 주택에 4∼5명의 하인을 고용, 집안의 허드렛일에서부터 큰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들을 손하나 까딱않고 해결하고 있다.
브라질·아르헨티나·멕시코등에서는 자가용 비행기를 보유하고 있는 부호들의 숫자도 상당수에 이른다.
또 웬만한 부자면 최고급, 최신형승용차에 한두채의 별장, 두세명의 하인을 거느리고있고 휴가철을 이용한 외국여행은 필수적이다.
멕시코의 칸쿤에서 만난 한중소기업인은 조그만 과자공장을 경영하고 있다면서도 LA에 별장을 두고있고 4명의 자녀를 모두 미국에 거주시키며 어렸을 적부터 미국교육을 받게했다고 자랑했다고 또 브라질의 한국회사에서 운전사로 월2백달러의 월급을 받고 근무하는 셀소데소사씨도 별장을 2개나 갖고 있고 매주 주말마다 자신의 별장으로 가족과 함께 떠난다고했다.
이처럼 중남미에서는 일부중산층을 포함, 웬만한 부자라고 하면 일반서민들의 생활과 극명하게 구분되는 생활패턴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수있다.
대다수 증남미 국가에서 전체국민의 60%이상이 월1백달러 미만의 기아임금으로 인간이하의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들의 호화생활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고 현지관계자들은 설명하고있다.
중남미 사회가 공통적으로 안고있는 문제중의 하나가 바로 이같은 극심한 부의 편재 현상이다.
6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경제개발을 기점으로 하여 심화되기 시작한 부의 집중현상은 중남미 각국이 경제개발에 피치를 올리는 70년대들어 더욱 가속화 됐다는 것이다.
국내자본이 없는 중남미 국가들은 경제개발을 달성키 위해서는 외국자본의 유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반면 풍부한 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다국적 기업들에 제공했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경제개발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들 외국기업들이 국내시장을 독점하는 현상을 유발했고 국내 재벌기업을 포함한 대다수 기업들이 자본과 기술의 제휴를 통하여 다국적기업에 계열화되거나 하청화되는 「종속」의 결과를 초래했다.

<최저임금은 줄어>
특히 「저임금」을 기본으로하고 있는 다국적기업 주도의 경체발전은 외국기업들의 경제독점과 맞물려 부유한 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빈부격차 확대 현상을 필연적으로 수반했다.
바로 이같은 경제개발모델을 가리켜 브라질형 경제발전 모델이라고 부르는데 초반 몇년간은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게 되지만 결국 국내시장한계, 국제수지악화, 지나친 대외의존등의 근본적인 취약점으로 인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중남미 각국들의 심각한 사회문제인 「빈부 격차확대」와 「대외 증속의 심화」도이같은 원인에서 비롯됐다고 현지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브라질의 최대일간지 오에스타도는 브라질 경제기적7년 (69∼76년) 기간중 전체국민의 1%에 해당하는 최상위 부유층이 차지하는 국부 점유을이 69년 11·7%에서 76년에는 17· 8%로 확대됐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고도성장의 원동력이됐던 근로자들은 고도성장에의해 거꾸로 생활이 어려워지게 됐으며 7년동안 최저임금이 55%나 감소한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고 이신문은 보도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브라질뿐 아니라 브라질형 경제개발모델을 추구했던 아르헨티나·멕시코·칠레·우루과이등 대다수의 중남미국가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있다.
문제는 경제개발의 실패와 함께 심화된 부의 집중현상이 80년대에 들어서도 계속되고있고혁명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치유될 수 없다는 점이 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로마교황청과 심각한 불화를 빚었던 브라질의 보프신부는 전체인구의 1%는 미국의 거부보다 부자이고 4%는 미국부자들과 비슷한 반면 15%는 대체로 인간다운 삶을 누릴수 있는중산층이며 30%는 저소득층이고 50%는 극빈층이라고 주장하고있다.

<31%는 극빈자>
브라질 정부의 공식통계는 89년의 경우 월소득 50달러미만의 소득자가 전인구의 31%,50∼2백50달러가 53%, 2백민달러 이상이 l6%라고 집계하고 있으며 2백50달러미만의 저소득층이 전인구의 84%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다.
뿐만아니라 UN중남미경제위원회가 제시한 최저 임금변동추이통계자료는 80년을 1백으로할때 89년까지 10년동안 아르헨티나는 71·1%, 브라질은 70·6%, 칠레는 79·7%, 에콰도르42·3%, 멕시코 50·7%, 페루 26·7%, 우루과이 78·6%, 베네수엘라 68·6%로 감소, 대다수국가들에서 최저임금의 실질수준은 해를 거듭할수록 감소되고있음을 보여주고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는 나라치고 빈부의 차가없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중남미의경우 자본주의 경제가 안고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의 하나인 「부의 공정분배」가 지나치게 왜곡돼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분배왜곡을 보여주는 단적인 또다른 예의 하나는 상위 20%가 차지하는 총국민소득 점유비율이 하위 20%의 30배를 넘는 다는 사실이다. <도표>
또 이 통계는 라틴 아메리카의 빈부격차가 북미·유럽·아시아보다는 3∼7배나 심하다는 현실을 들어내 보여주고있다.
특히 갈수록 늘어나는 실업자·반실엄자들이 막대한 숫자에 달해 체제를 동요시키기 시작했다는 점에 중남미국가들의 고뇌에 찬 우려가 도사리고 있다.
글 이은윤 특집부장
문일현 기자
사진 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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