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입고 방문객과 얘기나누며 소일|"한국음식먹고 생활해 장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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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돌아가신 분이 독립운동할때와 6·25동란을 치를 적에는 배곯는 동료들을 위해 좋은 음식을 허락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드렸는데 이젠 집없는 국민들이 거처를 마련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오는 15일로 90회 생일을 맞는 고 이승만초대대통령 미망인 프란체스카여사는 5일이화장에서 고인과 동고동악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요즘의 근황과 생각을 밝혔다.
노태우대통령이 지난해 생일기념으로 보내준 연초록 한복치마저고리차림을 한 여사는 매일 오전 4시반쫌 일어나 성경을 읽거나 더러 종교음악을 감상한뒤 이화장을 방문하는 3백∼4백명의 관람객들과 담소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하는 재미로 소일한다고 자신의 건강을 은근히 과시했다. 『한국음식이야말로 세계 제일의 건강식이지요. 내가 태어난 오스트리아에선 나처럼 아흔살까지 사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여사는 자신이 『한국에 시집와 한국음식을 먹고 생활했기 때문에 장수하고 있다』며 좋아하는 음식으로 콩나물잡채·현미떡국·약식등을 들었다.
한국생활56년에 어느덧 외모조차 거의 한국할머니처럼 변해버린 프란체스카여사는 쪽찌어 빗은 머리에 한복치마저고리가 양장보다 훨씬 어울린다.
빈에 있던 두언니가 작고해 그녀의 고향엔 두조카딸만 남아있으나 서로 대면하지 못해 사실상 친정과 인연이 끊기다시피한 여사는 양자 이인수씨(59·명지대교수)부부의 각별한 봉양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된 두손자가 장가가는 것과 남북통일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죽었으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여사는 이박사가 작고하기전 여사를 위해 이화장뜰 한모퉁이에 심어놓았다는 함초롬히 꽃망울이 여문 은방울꽃에 눈길을 돌려 조용히 자신의 생을 돌아보는 표정을 짓고는 6일 현충일에는 고인의 묘소를 찾아야겠다고 말했다. <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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