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의 깊이 보인 종장결구 인상적 『섬·소라』|메시지 전달되나 형상화에 아쉬움 『달동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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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겨레시를 말하는 현 시조단의 많은 사람들은 「비켜서서 바라보는 일」에 매우 익숙해 왔다. 광주 민주항쟁 때도 그 현장을 비켜섰고, 이데올로기·노사분규·농민들의 절규현장도 비켜서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것이 겨레시의 이른바 당위성인가. 비켜서서 바라보는 습관은 자신의 삶까지 교묘하게 위장시켜왔다. 예를 들면 아픔을 노래한 것이 사치스런 아픔이요, 절망을 읊조린 것 또한 호사스러운 절망이 있을 뿐이다.
아픔이든 절망이든 그 속을 통과하지 않고 언제나 비켜서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중앙시조지상백일장」은 역사의 현장이든 자신의 삶이든 비켜서지 않고 쓰러지면서라도 통과하는 진실한 신인을 기대 한다.
장원으로 뽑힌 김무영씨의 『섬·소라』는 초·중장 첫 행의 파격에도 불구하고 평시조의 새로운 감각을 보여주고 있어 반갑다. 특히 종장의 결구는 화음의 시적 재능의 깊이를 보여준 가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수에만 머물지 말고 보다 넓고 큰 시각으로 시조를 써주길 기대한다.
차상의 『달동네』는 메시지는 나름대로 전달되나 시적 형상화에 미흡한 것이 못내 아쉬웠고 차하 『항구의 봄』은 신선한 발상이 선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등교길』은 섬세한 시각이 돋보였고 『겨울강』의 송지은씨는 시조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가 다음 작품을 기대케 했으며 『고무장갑』은 생활감상이 시조로 나타난 좋은 예라 하겠다.
그리고 『밭매는 사람』은 시골의 정취를 매우 산뜻하게 노래했다. 매달 증가되는 투고 작품이 이달에는 더욱 두드러진 현상을 보여주어 시조에 대한 관심의 고조를 더불어 느끼게 해준 한 달이었다. 멀리 미국에서 보낸 김영식씨의 『조국』은 격려의 의미에서 챙겨보았다.

<심사위원:김원각·유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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