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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사러 떠나는 이천 '하루 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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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이천’이 그렇게 가까운 곳인 줄 몰랐다. 서울에서 1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이천은 드라이브를 즐기거나 시골의 고즈넉한 자연을 즐길 만한 곳은 아니었지만, 보고 먹고 즐기는 여유를 부리기엔 더할 수 없이 안성맞춤인 곳이다. 하루의 반만 투자하면 서울에서의 피곤함을 모두 잊을 수 있는 그곳, 이천에 다녀왔다.

▣ 흙내음 나는 그릇에 대한 욕심

이천에 가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그릇 때문이다. 평소 갖고 싶었던 질그릇이나 옹기그릇 등을 사고 싶어서. 그 마음을 계속 흔들어댄 건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가로 20cm, 세로 10cm 정도의 작은 사각접시다. 놀러갔던 이천의 한 요장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그 접시는 사실 접시 부분과 다리 부분이 반쯤은 벌어지고 수평이 맞지 않는 등 예술적인 면은 물론 완성도면에서도 한참 떨어진 것이었지만 흙이라는 재료에서 풍기는 자연스러움과 유약의 그 신비로운 매력은 여전해서 다른 것들을 제치고 내가 가장 아끼는 그릇이 되었던 것.

손님이 오면 항상 그 접시에 과일을 담아 내곤 한다. 과일을 아무렇게나 깎아 담아도 정갈한 느낌이 나고,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제대로 차린 듯한 느낌을 주는 매력이 있기 때문. 하얗고 반질하게 만든 외국의 그릇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다.

그 접시에 대한 애착이 점점 심해질수록 더더욱 ‘그런 그릇’이 아주 많을 것 같은 이천에 ‘그런 그릇을 사러’ 가고 싶어졌다. 게다가 어떤 분이 작년에 ‘이천 도자기 축제’에 가서 평소 너무나 좋아하던 광주요 그릇 세트를 40%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했다는 얘기까지 듣는 순간, 이천에 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

▣ 이천 사람들, 이천을 얘기하다

이천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긴 했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를 무작정 찾아간다는 건 아무래도 용기 없는 나에겐 무리였다. 기자가 이천에 대해 아는 건 도자기가 유명하고, 쌀밥이 맛있고, 온천이 좋다는 것 정도의 기본적인 상식뿐이었으니까.

떠나기 며칠 전부터 인터넷과 여행서적을 뒤적이며 이천에 대해 공부했다. ‘이천(利川)’이라는 지역은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뜻을 품고 여기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가로질러 흐르는 복하천을 잘 건널 수 있는지 점을 쳤는데, 그 점괘가 바로 ‘이섭대천(利涉大川)’이었던 것. 즉 ‘큰 내를 건너 이득을 본다.’는 뜻이다. 그 후 점괘대로 서목이라는 이천 사람이 왕건을 인도하여 이 내를 무사히 잘 건너게 되었고, 후삼국의 통일이라는 대업을 달성하게 된 데서 ‘이천’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천‘이라는 지역은 뜻을 품으면 뜻을 이룰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해 득을 볼 수 있다는 곳 아닐까?

이런 작은 도시를 여행할 때는 남들이 모두 보는 드러난 곳보다는 숨겨진 곳을 찾아가서 보고 싶다는 욕심에 ‘이천’에 관련된 인터넷 카페를 찾아다녔다. 그중에서 이천에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이천 사람이면 모두 모이세욧’이라는 인터넷 카페에서 이천에 가면 꼭 해야 할 것, 들러야 할 곳, 맛집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설봉공원과 도예촌, 온천에 들렀다가 쌀밥까지 먹고 돌아오겠다는 것. 기자는 이천으로 출발했다.

▣ 흙내음과 흙의 감촉을 직접 느껴보다

평일 오전 9시 30분에 출발. 정확히 오전 11시에 상상만 했던 이천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나서 느낀 건, 솔직히 이천에 대해 ‘그렇게 많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될걸 그랬다.’이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이천IC를 빠져나오자마자 곳곳에 도자기 판매점과 ‘이천 도자기 축제’를 알리는 플래카드, 쌀밥집이 쭉 늘어서 있었기 때문. 그것만 봐도 이천이 무엇으로 유명한지, 무얼 하고 가야 하는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도예마을’이라는 어휘에서 오는, 뭔가 전통적이고 옛것 같은 느낌은 가질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소박한 동네였던 것.
게다가 지도만 보았을 때는 어디가 어딘지 너무 헷갈려 사람들이 알려준 곳을 찾아갈 수 있을까 막막했는데 막상 이천에 와보니 작은 도시여서 길을 찾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먼저 그렇게도 기대했던 이천의 도자기를 구경하기로 했다. 이천은 옛날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을 재현해내려는 수많은 도예가들이 터를 잡고 있는 곳. 그래서 이천 도자기는 전통도자기 재현에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 훌륭한 작품과 다양한 디자인의 섬세한 생활도자기가 함께 있는 곳이다.

‘우리 그릇이 있는 곳’ 하면 인사동 생각만 나서 그곳처럼 쭉 길을 가다 보면 도자기를 구경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도자기를 밖에 쭉 늘어놓고 팔거나 전시한 곳은 거의 없었다. 대신 ○○도요, ○○요강 등 도자기를 만드는 도요가 있다는 걸 알리는 간판만 눈에 띄었을 뿐. 마음에 드는 곳에 차를 세우고 한 곳 한 곳 둘러봐야 했다. 하지만 이방인이, 게다가 좋아하기만 할 뿐도자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는 피해의식 때문에 차를 세우고 아무 곳이나 기웃거린다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떠나기 전 사람들에게 추천받은 두 곳을 구경하기로 했다. 우리에게 생활자기로 유명한 광주요와 이천에 도예촌을 형성하는 데 시초가 된 해강도자미술관이 그곳. 먼저 해강도자미술관으로 향했다. 워낙 도요들이 모여 있는 탓에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천IC를 빠져나와 우회전해 이천 시내로 통하는 3번 국도를 타고 직진하다 보면 바로 입간판이 보인다. 입간판을 보고 동네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 보면(설마 이런 곳에 있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하게 한, 보통 동네 길) 쭉 돌담으로 둘러싸인 해강도자미술관이 나온다.

도착해보니 그 근처엔 해강도자미술관 말고도 다른 도요가 많이 몰려 있었다. 이천에 있는 대부분의 도예촌이 그렇듯 여기에는 이곳에서 만들어낸 도자기를 전시·판매하는 공간과 이천에서 출토된 자기들을 전시하는 미술관, 전통가마 견학 장소 그리고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볼 수 있는 도예체험장까지 갖추고 있었다.

미술관 1층에는 도자기의 이해를 돕기 위한 도자문화실과 해강선생의 유품이 있는 해강기념실과 판매점이 있고, 2층에는 유물전시실이 있다. 개관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인데 매주 월요일엔 문을 열지 않는다. 입장료는 2천원.

전시관을 나온 뒤 책에서만 보던 전통가마를 보러갔다. 요즘엔 도자기를 기계식 가마에 굽는 것이 일반화되었지만 이천에는 아직도 전통가마에 도자기를 굽는 곳이 50여 곳이나 된다고 한다. 흙을 이용해 계단식으로 만들어놓은 전통가마, 흙가마 옆에 땔감으로 차곡차곡 쌓아놓은 나무들이 화려하진 않았지만 ‘이것이 이천이구나.’라는 인상을 받게 했다.

아주 잘 빚은 도자기라도 이 가마 안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예술품이 되느냐 깨진 조각이 되느냐가 판가름나는 것. 몇날 며칠 정성을 다해 만든 작품이라도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가마 안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와야 비로소 내 작품이 되는 것이니. 다 만들어진 것을 깨버리는 안타까움은 고이 기른 자식을 한 번의 사고로 잃는 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절대 겉으로 내 보이지 않고 속으로 삼키면서…. 도자기 굽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이번에는 정말 한번 해보고 싶었던 그릇 만들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천의 요장에서는 대부분 도예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직접 물레를 돌려가며 흙덩이를 주물러 그릇 형태까지 만들어볼 수도 있고, 완성된 그릇에 그림이나 글씨, 문양을 새겨 넣을 수도 있다. 소요 시간은 1~3시간. 완성된 그릇에 문양을 새기는 경우 5천~2만원 정도를 내면 초벌, 재벌을 거쳐 완성된 작품을 택배(착불)로 1개월 정도 후에 보내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컵이나 접시, 화분, 필통을 만든다고 한다.

교실 한켠에 놓인 선반장에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고 간 추억이 담긴 그릇들이 가마에 들어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연인끼리 와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글귀를 새겨 넣은 머그, 아이가 삐뚤거리는 글씨로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자기를 그려 넣은 필통, 나름대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보리라 작정한 듯 문양도 새겨 넣고 심혈을 기울인 듯한 접시… 등이 있다.

백화점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추억과 즐거움이 담긴 것들이라 참 탐났다. 이 도예교실은 시간 내어 한 번쯤 즐기고 가길 바란다. 해강도자미술관에서 나와 우회전을 해 100m쯤 가면 광주요 전시장이 있다. 고급스런 생활자기로 유명한 이곳은 다른 도요들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유명한 제품이 나오는 현장을 목격하는 것도 새로운 즐거움이니까. 판매장을 겸한 전시장에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뿌듯해지는 자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 천혜의 땅에서 자란 쌀로 지은 밥

예로부터 이천쌀밥은 임금님께 진상했을 정도로 품질과 맛을 인정받았다. 토질이 기름져서 논농사가 잘 되기로 타고난 지역이기 때문. 이천 시내로 들어가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쌀밥집일 정도로 많다. 어느 작은 쌀밥집에 자리를 잡았다.

이천쌀밥집들의 특징은 주문을 하면 그제서야 무쇠솥에 밥을 짓기 시작한다는 거다. 그래서 적어도 20분은 기다려야 밥을 먹을 수 있다. 거기에 방금 밭에서 딴 야채로 쓱쓱 무친 것 같은 나물하며 조기구이, 국물을 적게 잡고 자작하게 끓인 구수한 된장찌개, 콩비지 찌개 등 흔히 쓰는 표현으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반찬들을 함께 내놓는다.

오랜 시간 기다려온 지루함을 모두 잊게라도 하듯 김이 모락모락나는 쌀밥과 입이 떡 벌어지는 상차림이 펼쳐지는 것. 하지만 사실 그 따끈따끈한 밥맛에 빠져들다 보면 많은 반찬에는 젓가락이 갈 틈이 없다. 밥 한 공기만으로도 충분히 “배 부르게 잘 먹었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 상념을 잊는 2시간의 온천욕

이제 이천에 가서 해야 할 일 중 마지막 한 가지만 남았다. 바로 온천욕. 이천온천은 약 5백년 전인 조선 세종대왕 때 온천배미라 불리던 곳에서 더운물이 솟아 눈병이 있던 농부가 그 물로 얼굴과 눈을 씻었더니 눈병이 나았다고 알려지면서 피부병이나 신경통, 산후조리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사실 온천뿐 아니라 이천은 물맛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코카콜라, 하이트 등 물을 주재료로 하는 공장들이 일찍부터 이곳에 터를 잡은 것. 이 물은 위장병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무튼 이천에서 온천욕하기에 가장 무난한 곳은 호텔 미란다&스파플러스(031·633-2001, www.mirandahotel.com).

근래에 야외수영장 등까지 갖춰 성수기 때는 30분~1시간이나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을 정도로 꽤나 인기 있는 곳이다. 온천수의 온도가 36℃로 따뜻하고, 약알칼리성으로 특별한 냄새가 없어서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에도 부담이 없다.

이곳에는 인삼탕, 목초탕, 청주탕, 족탕 등의 건강온천에 자수정방, 산소 옥냉방, 참숯방 등 찜질방은 물론 실내수영장과 어린이 물놀이풀, 유수풀 등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곳까지 있다. 시간이 없다면 한 가지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해 온몸이 늘어지도록 쉬는 것이 좋겠다. 수영장 물이 따뜻해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온천욕은 하루의 고단함을 싹 풀어주는 동시에 건강에도 매우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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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길 : 이천에서 온천과 도자기 도요, 이천 도자기 축제가 열리는 설봉공원, 쌀밥집 등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워낙 작은 도시라 대부분의 시설들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 승용차로 올 경우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서이천IC로 나와 이천 방향 3번 국도,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이천IC로 나와 이천 방향 3번 국도를 이용한다. 대중교통으로는 고속버스터미널(서울-이천 60분 소요), 동서울터미널(동서울-이천 60분 소요), 수원시외버스터미널(수원-이천 60분 소요) 등이 있다. 이천에서 하차한 후 택시로 5분 정도 거리면 대부분의 지역으로 이동 가능. 호텔 미란다의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해도 좋을 듯.

▶할인받는 법 : 호텔 미란다&스파플러스를 이용할 때는 오전 10시 이전에 예약하면 할인 받을 수 있다. 도자기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할인쿠폰도 발행하므로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서 미리 확인할 것. 호텔 미란다&스파플러스는 온천욕과 온천수영을 즐길 수 있는 이천 최대 테마파크. 이천 도자기 축제와 연계한 상품은 물론 온천욕과 식사를 겸한 당일 온천 여행 등 패키지 상품도 다양하다. 무료 셔틀버스는 호텔 뉴월드에서 출발하는 강남선과 야탑역 뉴코아백화점 앞에서 출발하는 분당선이 평일의 경우 오전 10시 부터 오후 4시까지 2시간마다 운행되고 있다. 셔틀버스 운행시간은 홈페이지 참고. 영업시간 오전 6시~오후 9시 입장료 어른 온천탕 9천원, 온천탕+찜질방 1만4천원, 수영장 등까지 이용할 수 있는 자유이용권 3만5천원 문의 031·633-2001

▶월요일은 피할 것 : 도자기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온다. 심지어 유치원이나 학교 등에서 단체견학을 오기도 한다. 간단한 점심 도시락은 싸가지고 갈 것. 월요일에는 대부분의 도요 전시장과 체험관이 휴관하므로 피할 것.

▶이천 도자기 축제에 가고 싶다면 : www.ceramic.or.kr에 들어가면 이천 도자기 축제에 관한 모든 자료를 얻을 수 있다.

▶해강도자미술관 : 한국의 도자기 발달사와 도자기 빚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도자 전문 미술관. 청자 4백5점, 백자 4백26점 등 총 1천점이 넘는 도자기와 7천여 점의 도자기 관련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도예교실에서는 개인지도도 가능하다. 일일수강일 경우 예약을 하면 미술관 입장료가 무료다. 소형 컵이나 접시, 항아리 등을 자유제작하거나 문양을 넣을 수 있는데, 제작에 2시간 정도 걸리며 1개월 정도 지나 오동나무 박스에 포장하여 수신자 부담 택배로 보내준다. 개관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30분, 매주 월요일과 명절 휴관 문의 031·634-22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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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레몬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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