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비호감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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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좋고 싫음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 보통 좋다고 여기는 감정이 호감(好感)이다. 아주 좋아하는 마음이 드는 단계는 애호(愛好)다. 호감의 반대말은 악감(惡感)이다. 싫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간 것이 증오(憎惡)다. 그냥 싫은 게 아니라 미운 마음까지 드는 것이다.

요즘엔 호감과 악감 사이에 비호감(非好感)의 단계가 새로 생겼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싫거나 미운 것은 아니다. 눈이나 귀에 거슬리거나 다소 거부감이 드는 정도다. 얼마 전부터 일부 연예인들이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약점을 강조하거나, 일부러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유행어가 됐다. 이들은 예전 같으면 방송에서 금기시됐을 법한 표현이나 행동, 일반적으로 호감을 갖기 어려운 외모를 오히려 강점으로 내세워 인기를 끌고 있다. 막무가내식 호통 개그의 박명수, 듣기 거북한 콧소리의 현영, 소음에 가까운 수다쟁이 노홍철 등이 그들이다. 빼다 박은 듯이 잘생긴 외모나, 천편일률적으로 정형화된 스타일보다 그저 그런 외모에 거북하리만치 튀는 스타일이 오히려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파격과 역발상의 승부수가 먹히는 셈이다.

비호감은 이제 기업의 마케팅 전략으로까지 진출했다. 마케팅의 목적은 단 하나. 어떻게 하면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뚜렷이 각인시키느냐다. 평범한 광고로는 더 이상 주목을 끌지 못한다. 그래서 비호감 광고가 등장했다. 일부러 소비자가 거부감을 느끼도록 유도함으로써 제품과 서비스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부각시키자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입소문 강한 기업 만들기'보고서는 "(광고의) 부정적인 내용이 소비자들의 기억에 더 오래 남고, 영향력도 더 크다"며 과학적 분석까지 곁들인다.

지난주 MBC '100분 토론'에 나온 노무현 대통령은 전형적인 비호감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것처럼 보인다. 대다수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일부러 엇박자로 가거나, 굳이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발언만 골라서 한다. 파격과 역발상, 독선과 오기로 비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전략이다. 국민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겠다는 목적이라면 노 대통령의 비호감 마케팅 전략은 성공적이다.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10%대에 불과하고, 100분 토론의 시청률은 5%에도 못 미쳤다. 그러나 비호감이 지나쳐 악감이나 증오로 나가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