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거인」살리기 “단계처방”/시장경제 추구하는 소련의 고육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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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침체의 늪… 공산경제 실패 인정/물가ㆍ실업 등 해소가 성패 좌우
소련이 지금까지의 중앙집중식 통제경제방식에 입각한 경직된 경제체제에서 보다 자유로운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급속히 추진하기 시작했다.
22일 소련 대통령자문회와 연방위원회 합동회의를 통과,최고회의에 상정된 리슈코프총리 명의로 된 「리슈코프개혁안」은 ▲가격제도 개혁 ▲새로운 세제도입 ▲사유재산법 ▲반독점법 ▲고율의 이자법 ▲일반은행설립허용등 발전된 금융제도등 총 7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의 개혁안이다.
리슈코프총리는 지난해 12월 인민대회에 91∼95년 제13차 5개년 계획안을 제출,「경제건전화」계획을 발표한바 있는데 이안은 ▲소비물자부족 극복 ▲다양한 소유형태 허용 ▲시장원리 발전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미온적 방식으로는 소련이 처한 경제난국을 헤쳐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시작서부터 드러났다.
따라서 이번 개혁안은 소련이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선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된다고 봐야 옳다. 그동안 소련당국은 현재 폴란드에서 행해지고 있는 「실험」을 유심히 지켜봐 왔다.
폴란드는 지난 1월1일 실로 혁명적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상품에 대한 국가보조를 일체 중단,가격형성을 시장기능에 맡기고 적자를 내는 공장ㆍ기업을 과감히 폐쇄했다.
이같은 조치는 일시적으로 엄청난 물가고,실업자 양산을 몰고옴으로써 폴란드 국민들을 극도의 생활고로 몰고갔으나 국민들이 고통을 감수하고 정부를 따름으로써 아직 성공이라고 할 수 없으나 상당한 긍정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소련은 폴란드식 충격요법을 따를 수는 없었다. 폴란드는 자유총선을 통한 비공산 민주정부가 국민적 신뢰를 바탕으로 극도의 내핍정책을 요구할 수 있으나 민족분규ㆍ계층간 갈등 등으로 가뜩이나 국민적 일체감일 부족,붕괴직전의 소련으로선 폴란드 방식을 도입할 경우 내란을 피할 수 없으리란 판단에서다.
이번 개혁안에서 볼 수 있는 「절충적」 성격은 이같은 일련의 고민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리슈코프안은 시장경제체제 도입을 지금 당장이 아니라 앞으로 5년동안 준비기간,형성기간,발전기간의 3단계로 나누고 있는데 이 기간중 개혁과정에서 오는 부작용을 최대한 완화시키려는 복안으로 볼 수 있다.
소련정부는 국가의 가격통제가 해제된다해도 필수식품에 대해서만은 가격통제를 실시,전체적으로 소비자가격 및 도매가격이 각각 43%와 46%정도로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폴란드의 예를 고려,금년말까지 2백∼3백% 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비관적 전망을 내리고 있다.
식료품의 경우 소매가격이 두배만 오른다해도 약 1천1백20억루블(1천8백억달러)의 재원이 추가 소요됨으로써 국민들,특히 빈곤층이 받을 고충은 엄청날 것이다.
이 경우 큰 불안요소는 현재 소련국민들이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액수의 퇴장화폐다. 그동안 소비물자 부족으로 사용되지 않은채 은행예금 또는 장농속에 숨어있는 퇴장화폐는 수천억루블 규모로 이 돈이 일시에 풀려나올때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 분명,엄청난 사회불안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또 한가지 문제는 실업문제다. 소련의 한 경제주간지는 최근 지난해말 현재 소련전체의 실업자수는 2백만명에 달하며 조만간 1천만명,심지어 2천5백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제2의 러시아혁명」으로 불리는 고르바초프의 경제개혁은 이같은 문제점 때문에 그 성공여부가 매우 불투명한 상태다.〈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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