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술의 일요일(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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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손목동맥이 잘린 응급환자를 차에 태우고 6시간동안 병원 일곱곳을 헤매야 했던 홍은호순경(경기도 남양주경찰서 평내파견소)은 사고가 있었던 지난 일요일(20일) 『인간들에게서 가장 싸늘한 비애를 느꼈고,또한 자신을 되돌아 볼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자그마한 이익에 매달려 인간생명의 존엄성마저 안중에 없는 인술은 없느니보다 못한것 아니겠어요.』
야간근무중이던 홍순경이 응급환자 신고를 받은 것은 20일 오전1시30분쯤.
환자인 박재영씨(31ㆍ공원ㆍ경기도 미금시 평내동)집에 달려갔을때 박씨는 오른쪽 팔목에서 콸콸 피를 쏟으며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마당에 쓰러져 있었다.
술김에 주먹으로 유리창을 쳤던 환자는 이렇게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환자를 태운 순찰차가 맨처음 찾은 곳은 같은 동네의 신성의원.
『원장선생이 없어 치료 불가』라는 얘기에 미금시 동서울병원을 찾았으나 대답은 마찬가지.
『순찰차까지 고장나 저의 프레스토 승용차에 환자를 태우고 교문리병원으로 내달았지요.』
『수혈할 피가 없으니 큰 병원으로 가는게 좋겠어요.』그러나 이 병원의 응급조치만은 친절했다.
이때 환자의 혈압은 이미 40∼70까지 떨어져 위험한 상태였다.
다음으로 찾아간 서울위생병원,상봉동 부국병원도 『치료불가』라고 퇴짜를 놓아 「진짜 큰병원」인 경희의료원으로 갔다.
이번엔 『수술할 정형외과 의사가 없다』고 했고,성북정형외과 역시 『치료 불가』였다.
다급해진 홍순경은 보사부ㆍ언론사등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고,이사실을 전해들은 경희의료원은 오전7시30분이 돼서야 마지못해 환자를 받아 응급수술을 했다.
홍순경은 그러나 자신의 병원에서는 치료를 못했지만 끝까지 환자수송에 동행했던 교문리병원 이승홍 간호조무사(31)에 대한 고마움이 있어 다른 병원에 대한 미운 마음을 어느정도 덜수 있다고 했다.
『9년 경찰관생활을 하면서 나는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무성의한 적은 없었나 뒤돌아봅니다.』 홍순경의 신사고다.<김 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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