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규 경제부총리 … 출장 동행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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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성큼 다가왔지만 썰렁한 경기 탓인지 민심은 바닥이다. 곳곳에서 한숨소리다. 이럴 때 나라 경제를 책임지는 권오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28일 대구에서 열린 지역특구 박람회 개막식 참석차 출장에 나선 그와 동행해 '열차 인터뷰'했다.

"수도권 규제가 투자를 막는다고 추상적으로 얘기하지 마라."

"돈과 사람이 빠져나간다지만 서비스 수지가 경쟁력의 척도는 아니다."

"성장동력은 민간이 담당해야 한다."

28일 오전 서울역을 떠나 동대구로 향하는 고속철도(KTX)의 객실. 권오규 부총리가 좌석 깊숙이 묻었던 몸을 일으키고선 이내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야심차게 내놓은 정책이나 목청 높였던 소신이 푸대접을 받아서였을까. 군데군데 '답답하다' '안 풀린다'는 듯한 어감이 묻어났다. 평소 모습과 달리 다소 격한 어조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권 부총리 옆좌석에 옮겨 앉자 오른쪽 차창 밖으로 군데군데 공장 굴뚝이 스쳐 지났다. 먼저 공장 얘기를 꺼냈다. 마침 이날 권 부총리가 기업들이 공장을 많이 짓고 투자도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며 '기업경영개선 종합대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우선 "수도권 규제 완화의 수준이 미지근하고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이 빠져 재계의 반응이 시큰둥하다"고 말하자 권 부총리는 작심한 듯 불만을 쏟아냈다.

"기업들이 수도권 규제나 출총제 때문에 투자를 못 한다고 하면 안 돼요."

그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 때문에 투자를 못 하는지 직접 제시하라"고도 했다. 특히 "수도권 규제는 결국 대기업 문제인데 정부가 무조건 해준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선을 확실하게 그었다. 재계와의 인식 차가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사실 이번 대책이 푸대접받으면 그도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번 대책은 그가 취임 직후부터 두 달간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첫 성과물이기 때문이다. 기업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만들고 불어난 세금으로 복지 재원도 마련한다는 '권노믹스(권오규 이코노믹스)'의 첫 단추인 셈이다.

이게 안 통한다고 그에게 특단의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의 고민은 더 깊다. 얼마 전에도 그는 "국내외 여건상 원활하게 경제를 운영해 나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마음대로 선택해 꾸려나갈 수 있는 정책수단이나 제도적인 수단도 제약이 있다"고 토로했다.

'민간 기업에 대해 무조건 규제를 풀어줄 수 없다'는 권 부총리의 논리는 복지 지출 확대로 화제가 옮겨가자 엇박자를 내기 시작했다.

"성장엔진은 꺼지는데 왜 복지에만 매달리느냐"고 묻자 "경제 성장동력은 민간이 담당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연구개발이나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이제 민간의 몫인 만큼 기업들이 잘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곤 정부의 복지 지출 확대를 강조했다. 성장은 민간, 분배는 정부가 맡는다는 식의 이분법에 가깝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규제를 확 푸는 데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기업경영개선 대책에도 나오듯 '투자할 테니 규제를 풀어 달라'는 기업의 요청은 외면하고, 투자를 망설이는 기업에는 지방에 공장 지을 때 지원해 주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민간이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니 말이 꼬이는 것이다.

그는 또 "복지 예산을 늘리는 건 세계적인 대세"라고 주장하며 "선진국을 봐도 재정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몫은 5% 미만"이라고 말했다. 경제 여건이 선진국과 다른데도 복지만큼은 그들을 따라가겠다는 주장이다.

어느 새 KTX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논을 가로질러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박람회장에 도착하자 "지방 경기를 살려 달라"는 하소연이 권 부총리에게 밀려들었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너무 부담을 드리는 것 같지만 지방 좀 화끈하게 도와 달라"라고 말해 박람회 참석자들에게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또 "수도권 규제를 풀면 지방엔 공장을 짓지 않으니 규제를 풀지 말라"는 의견도 나왔다. 기업은 기업대로,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엇갈린 요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권 부총리는 박람회 개막식이 끝난 뒤 서둘러 서울로 올라왔다. KTX에 오르는 그의 어깨엔 '경기부터 살려 달라'는 추석 민심이 한가득 내려앉았다.

대구=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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