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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대도」 독일에서 배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최근 약 20일동안 동·서독과 동구국가들을 여행했다.
이번 여행기간 중 내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것은 통일을 위한 동·서독의 이성적이고 차분한 노력이었다.
양독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만나본 결과 가을 중 총선실시가 논의되는 등 독일의 통일은 내면적으론 이미 이루어졌고 형식적인 절차만 남았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동·서독의 통일이 이처럼 빨리 이루어지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만나본 사람들은 그 원인들로 30만명의 미군주둔을 비롯한 NATO 집단방위체제 아래에서의 서독의 정치안정과 경제번영, 초당적으로 일치된 서독정치세력들의 통일정책, 민족동질성을 유지하려는 동·서독인들의 지속적인 노력,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을 탈공산화 기회로 이용한 동독인들의 용기와 지혜 등을 열거했다.
통독 후에도 미군이 서독에 주둔하고 통일독일이 NATO에 잔류한다는 것에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다.
국민은 미군주둔으로 평화를 보장받으면서 마음놓고 정치안정과 경제번영을 이룩함으로써 통일을 위한 실력을 배양해온 것이다. 오늘의 독일통일이 실제에 있어 서독의 엄청난 경제번영에 대한 동독공산체제의 항복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서독정치세력과 국민의 그와 같은 자세는 참으로 슬기로운 것이었다.
서독의 정치세력들은 공정한 정권경쟁을 하면서 통일문제에 관해서는 항상 한 목소리를 유지해왔다.
서독은 또 그들의 경제번영을 바탕으로 알게 모르게 동독을 도덕적·경제적으로 꾸준히 지원함으로써 민족적 유대를 강화해 왔다.
한편 동독인들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을 매우 기민하게 탈공산화로 확대시켜 나갔다. 또 공산독재를 붕괴시키면서도 부패한 독재자이던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나 크렌츠에게 돌맹이 하나 던지지 않고 소련에 대한 비판을 삼가 소련의 거부반응 없이, 그리고 공산당의 강한 저항 없이 신속히 베를린장벽을 붕괴시키고 탈공산화를 이룩했다.
그런데 우리의 국내사정은 통일문제에 관한 한 서독의 사정과 정반대라 안타깝다. 정치세력들이 오로지 당리당략과 정권욕 때문에 치사한 정쟁을 벌여 정치불안을 조성하고 경제위기를 자초하는 골이라든가, 수시로 정부의 통일정책이 바뀌고 정당마다 통일에 관해 딴소리를 하고 있는 꼴 등은 서독의 사정과 완전히 정반대되는 것이다.
이제 「선통일, 후민주화」니, 「공화국연방제」니 하는 허튼 소리들을 하지말고 모든 정치세력과 국민이 협력, 정치안정·진실된 민주화·경제번영을 이룩해 장차 북한을 도와즐 태세를 갖추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다.
우리 남북한은 이제 동·서독에서 배워야겠다.
이철승 〈전 신민당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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