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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숙취 빨리 깰수록 좋다/김두겸(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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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총체적 난국」 극복에 기업가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선언한 「5ㆍ10결의」는 그 결의문대로 「난국 극복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명비평가 P 드러커의 말대로 현대는 곧 「기업이 대표적인 사회제도가 된 시대」다. 기업가야말로 자본주의의 엔진을 기동시켜 기업 그 자체를 키우면서 국력증진과 국민생활 향상에 기여하는 국가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기업가는 이윤추구라는 비즈니스 본능의 체현자이자 바로 체제 엘리트라는 두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기업가들의 맹렬한 활약으로 우리는 그동안 「한강의 기적」도 보았고 「승천하는 작은 용」이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6ㆍ29이후 지난 3년간 우리의 기업가들은 체제 엘리트 역할은 커녕 비즈니스 그자체에서도 제구실을 다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지난 3년간의 급격한 국내외 정세 변화 때문이다.
정치는 한치앞이 캄캄할 정도로 불안하고 노조운동은 운동을 넘어 과격투쟁으로 줄달음치고 환율은 끝없이 떨어지고 거기에 미국등의 시장개방 압력은 날이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해왔다.
모든 것이 일찍이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상황변화였다. 이런 과정에서 기업은 진취자존보다는 안정을,경쟁보다는 자제를 중시하게 됐고 한걸음 더나아가 기득권익에 안주,책상다리를 하고 앉아만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사면초가를 한탄만 하고 있다가는 체제 엘리트로서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을 넘어 기업 그 자체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지난 1백년간의 재계사는 우리나라 기업의 평균수명은 줄잡아 25년밖에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1910년 현재 대표적 재산가는 민영휘,송병준,장영효,김진섭,김경중,최현식,장길상,이윤용,민병석,정재학씨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25년이 지난 1935년의 10대 기업은 동아증권(조준호) 태창직물(백낙원) 경성방직(김연수) 함흥택시(방의석) 영보합명회사(민규식) 대창광업(최창학) 화신(박흥식) 호남은행(현준호) 동화산업(하준석)의 순. 25년동안 살아남은 기업은 경방(김경중→김연수)과 영보합명(민영휘 민규식) 둘 뿐이다.
다시 4반세기가 지난 60년도 초의 기업판도­. 당시의 10대 그룹은 삼성(이병철) 삼호(정재호) 개풍(이정림) 대한(설경동) 럭키(구인회) 동양(이양구) 극동(남궁연) 한국유리(최태섭) 동립(함창희) 태창(백남일) 등. 10대 그룹가운데 태창 하나만이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4반세기가 다시 지난 85년 현재의 사정을 보자.
외형기준 10대 그룹은 삼성(이병철) 현대(정주영) 럭키금성(구자경) 선경(최종현) 대우(김우중) 국제(양정모) 한국화약(김승연) 한진(조중훈) 효성(조석래) 쌍룡(김석원) 등이다. 10대 그룹 가운데 60∼70년대의 엄청난 격동을 딛고 살아남은 것은 삼성과 럭키금성 둘뿐이다.
1910년이후 85년까지 대체로 25년단위로 재계의 얼굴이 달라지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10대 그룹에서 1백대기업으로 확대해 보면 기업의 명멸은 더 심하게 나타난다.
기업의 영고성쇠는 물론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권위있는 미 포천지의 미국기업 톱 500사의 변화를 보면 매년 20∼40개의 기업이 랭킹에서 사라지고 있고 10년정도 지나면 톱 500사의 3분의1이 달라진다.
기업의 이상적 존재이유는 새로운 부가가치와 부를 끊임없이 사회에 제공하는 것이다.
이 역할을 할 수 없는 기업은 몰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다행이 우리의 톱기업들은 다소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스스로 더욱 활발한 투자와 과감한 기술개발을 바탕으로 근로자와 함께 생산성 향상과 수출 증진에 매진하는 한편 경영의 혁신과 민주화를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 있는 모범기업으로 키워갈 것을 굳게 다짐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지난 3년간 전체기업의 수비위주적 경영은 급성장뒤에 반드시 따라오는 숙취기로도 볼 수 있다. 숙취란 본래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오래가지는 않는 법.
이런 뜻에서 톱기업의 이번 결의는 이 격동기에 기업 스스로가 살아남을 수 있는 자구책이 될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체제를 유지ㆍ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이번 결정을 두고 일부에선 정부의 강압에 못이겨,또는 거센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결정이란 판단력을 필요로 하지만 이와 함께 어느정도의 용기도 필요로 한다」는 P 드러커의 말처럼 이번 결정과정에선 톱기업가들의 용기가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비업무용이든 업무용이든 기업부동산을 처분한다는 것은 기업쪽에서 보면 제살을 깎는 고통스러운 선택이게 마련이다. 약은 반드시 써야 한다는 필연적인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양약은 입에 쓴 것.
대부분의 효과적인 결정은 그렇게 유쾌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기업인들도 숙취기간이 지난 지금부터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공격적 비즈니스 형으로 기업을 살리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체제 엘리트로서의 역할도 다해줄 것을 많은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다.〈편집국장대리〉PN JAD
PD 19900515
PG 05
PQ 03
CP HS
SA P
CK 03
CK 07
CS B07
BL 2857
GI 김형배
TI 단체교섭 깨지자 강경파 득세/현대자동차 전면파업 배경과 전망
TX 현대자동차노조(위원장 이상범ㆍ34)가 15일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함으로써 현대중공업 분규에 이는 제2의 노사분규 회오리가 울산 「현대왕국」을 강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지난 2월13일부터 회사측과 벌여온 22차례의 단체교섭이 결렬되자 12일 조합원 총회를 열어 쟁의행위에 돌입키로 하고 그 방법과 시기는 노조집행부가 결정,대의원대회의 추인을 받기로 위임키로 결의했었다.
◎집행부의 「단계쟁의안」반대/조직내부 흔들… 조기타결 어려울 듯
노조집행부는 이에 따라 단계적 단체행동 방침을 세우고 14일 열린 임시대의원 대회에서 이 안을 상정했으나 일부 강경노조원들이 제시한 「15일 전면파업」안이 1백36대 96으로 가결됨으로써 파업으로 치닫게된 것이다.
노조집행부는 이날 ▲KBS사태는 이미 진정국면에 접어들고 있으며 ▲전면파업을 단행할 경우 조직이 와해될 우려가 있고 ▲파업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 준법 투쟁과 협상병행(15∼19일) 부분파업(21∼24일) 전면파업(25일) 등의 순을 거치는 단계적 파업안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사태 이후 노조집행부의 투쟁방향에 반발해온 강성노조원들의 주축인 민주실천 노조협의회(민실노) 소속 대의원들이 22차례의 단체교섭 결렬은 회사측의 무성의로 빚어진 것이라는등의 이유를 들어 즉각 파업안을 제시했으며,이 안이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어 가결된 것이다.
이는 현대자동차 노조집행부의 대표성이 흔들리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조직내부의 이같은 분열상태가 계속되는 한 현대자동차 분규의 조기타결 전망은 어둡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또 노동부는 지난 4일 노조측의 쟁의발생 신고는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려하는 한편 이번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의법조치할 움지임을 보이고 있다.
회사측 또한 이같은 불법파업에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대처하는 한편 파업을 주도하는 노조간부는 고소,고발조치 하겠다는 강경방침을 세우고 있어 노사양측의 「한발 양보」가 전제되지 않는한 또 한차례의 공권력 투입들이 예상되고 있다.
지난 2월13일부터 회사측과 단체교섭을 벌여온 노조측은 협상이 계속 결렬되자 지난 4월28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발생 신고를 냈었다.
그러나 중앙노동위는 노동조합법 제27조는 총회,또는 대의원대회를 열어 쟁의발생신고를 의결하기 위해서는 대회개최 15일전에 상정안건을 포함한 대회개최 공고를 하도록 하고 있으나 노조측이 이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를 들어 4일 쟁의발생신고를 반려했다.
현대자동차 노사양측은 지난 2월23일부터 임금인상을 포함한 단체협약 개정안 1백28개항목을 놓고 단체교섭을 벌여왔으며 이중 ▲주 42시간 근무제 ▲퇴직금 누진제실시 ▲징계위원 노사동수구성 ▲상여금 6백50% 지급등 35개항에 대한 의견을 좁히지 못해 협상이 결렬됐다. 노조측은 이에 따라 4월28일 쟁의발생신고를 내는 한편,현재중공업에 공권력이 투입되자 이에 항의,동맹파업에 들어갔으나 지난 3일 중앙대책위원회에서 정상조업을 결의,7일부터 조업을 개개하는 한편 9일부터 회사와 임금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네차례의 임금협상에서 노조측은 18.95%의 인상률을 요구한 반면,회사측은 5.95% 인상률을 고수,협상이 결렬되자 12일 조합원총회에서 쟁의행위 돌입을 결의했었다.
당초 관계자들은 파업방법ㆍ시기를 결정하는 14일 대의원대회에서 노조집행부가 제시한 「단계적 파업돌입안」이 우세할 것으로 분석했었다.
그러나 「즉각 전면파업 돌입」이라는 강경입장으로 급선회한 것은 현대중공업 공권력 투입과 관련해 실시된 동맹파업과 노사협상 과정에서 노조집행부가 연약하고 결단성이 없다는 민실노를 중심으로 한 강경노조원들의 비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울산=김형배기자】
□현자사태 일지
▲2월15일:1차 단체협상 시작
▲4월13일:20차 협상 93항 합의
▲4월18일:노조 임금협상 요청
▲4월20일:22차 단체협상 결렬
▲4월27일:대의원대회 쟁의신고결의 현중관련 연대투쟁 결의
▲4월28일:현중진압 경찰차량 방화
▲4월29일:현중관련 동조 파업결의
▲4월30일:비상총회개최. 파업
▲5월 1일:2일간 파업연장 결의
▲5월 3일:7일부터 정상조업 결정
▲5월 7일:정상조업
▲5월 8일:「선조업 후협상」부결
▲5월 9일:「선조업 수정안」통과 1차 임금협상 시작
▲5월12일:비상총회 쟁의돌입 결의
▲5월14일:즉각 파업 결의. 비대위 구성
▲5월15일:파업돌입
◎이상범 비대위의장 일문일답/“협상창구 열고 평화적방법 투쟁”
현대자동차 노조 비상대책위 이상범의장(34ㆍ노조위원장)은 14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현중사태 이후 현대자동차 노조원 6명이 구속되고 경찰이 회사안까지 들어와 수배자 색출에 나서는등 대의원들을 자극,전면파업으로 급선회했다』고 밝혔다.
­즉각 파업돌입으로 급선회한 이유는.
▲현중사태 이후 시위 관련 구속자가 6명이나 된다. 또 13일부터 사복경찰이 사내에 들어와 수배자 색출을 벌여 민주노조 탄압음모가 드러나 대의원들이 이에 자극됐다.
­앞으로의 투쟁방향은.
▲단계적으로 강도를 높여가며 투쟁하겠다. 가두시위는 하지않고 사내에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투쟁하겠다.
­파업돌입후 회사측과의 단체협상과 임금협상은.
▲파업후에도 협상창구는 항상 열어놓고 있다. 15일 오후부터 가능하다.
단체협상의 경우 35개 미타결 부문을 최대한 압축시켜 협상할 계획이지만 구속ㆍ수배자 문제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또 임금협상의 경우 회사측은 물가상승을 감안한 노조의 18.95% 인상 요구에 대해 5.95% 인상만을 고수,어려움이 있다.
­노동부는 불법파업임을 경고했는데.
▲중앙노동위와 노동부가 공정한 입장에서 노사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파업은 정당한 쟁의활동의 일환이다.
­경찰에 공무집행 방해ㆍ방화혐의로 입건돼 있는데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출두 요구서는 받았다. 비상대책위원들과 상의해 적절히 대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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