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송환」만으론 개선어렵다/최근 「미ㆍ북한관계」… 워싱턴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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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핵」ㆍ테러중지가 변수/본질 해결돼도 평양태도 주시해야
북한의 미군유해 반환 결정을 계기로 미­북한관계 추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은 이번 평양 태도를 미­북한관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보려는 생각인게 분명하다. 그러나 당장의 대북한 「비상조치」를 검토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이 이번 북한 결정에 고무받은 것은 명백하다. 국무부의 마거릿 터트와일러 대변인은 14일 『이번 합의를 매우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터트와일러 대변인은 유해송환은 미­북한관계 개선의 호혜적 진전을 향한 「일개조치」임을 명시했다. 『관계개선은 수개 문제들의 해결을 필요로하며 이 가운데에는 북한의 테러중지 선언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협정 조인이 포함된다』고 종전의 대북한관계 개선에 대한 미입장을 되풀이 했다.
유해송환은 미국이 공개적으로는 4년여전부터 요구해온 사항이며 북한이 이를 수락한 것은 미국으로서는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더군다나 미국은 지난 2월1일 제임스 베이커국무장관이 의회발언을 통해 대북한 관계 개선 희망을 공식 표명한바 있어 유해송환은 미 체면을 어느 정도 세운 측면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해반환은 인도적 문제로 미국의 대북한 요구사항중 평양이 마음만 먹으면 가장 용이하게 들어줄 수도 있었던 문제였고 미­북한 관계에 있어 본질적인 문제는 결코 아니었다.
미국이 대북한 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내놓고 있는 사항중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테러중지와 핵안전협정 가입 문제다.
북한은 미국이 제시하는 문제들을 수용할 경우 이같은 행동이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미 언질을 소련ㆍ중국 등 여러 채널을 통해 건네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이런 본질적인 문제에 관한 북한 태도를 좀더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미측이 제시하는 핵안전협정 문제등과 관련해 북한은 워싱턴으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다. 협정가입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은 한반도주둔 핵무기 철수를 줄기차게 내세우고 있으며 미­북한 직접협상을 통한 주한미군 철수 논의를 제시하고 있다.
유해송환과 관련해서도 북한은 미국에 대해 다른 정치적 요구를 내걸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며 노동당 정치국원인 전 북한외교부장 허담의 워싱턴 방문에 관한 일들이다.
작년 가을 평양을 방문한 개스턴 시거 전 미국무부 차관보로부터 조지 워싱턴대 학술회의 참석 초청을 받았던 허는 최근 워싱턴 방문 기간중 미 고위관리들과의 회담을 요구했다.
오는 17일부터 열리는 이 학술회의가 임박해 오면서 미 국무부도 그에 대한 비자 발급 문제등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거와 함께 허 초청작업에 나섰던 동대학 김영진교수는 『학술회의에만 참석하는 목적이었다면 미 정부도 그의 입국에 긍정적이었을 것』이라고 미 정부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그러나 미­북한간의 본질적 문제에 당장 진전이 예상되지 않는 것과 양쪽간의 분위기 개선은 별개 문제다. 어차피 미국은 워싱턴과 평양간의 문제들이 한꺼번에 획기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는다. 북한이 쉬운 문제에서라도 일단 성의를 보이면 어려운 부문에도 건설적인 검토를 하게 되지 않을까 기다리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특히 멀지않은 과거까지도 미­북한 접근에 대해 부단한 경계를 보여옴으로써 엄밀히 따져 「장애」 요소였던 한국의 입장이 크게 바뀐점도 워싱턴­평양관계 분위기에는 일단 긍정적 변화다. 수교직전의 상태로 대소ㆍ대중 관계를 급속 진전시키고 있는 한국은 이제 더이상 미­북한 관계에 작용할 수 없게됐고 오히려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미 정부에 대해 대북 관계 개선을 촉구하고 있는 현실이다.
미­북한 관계의 장래는 그러나 북한이 유해송환을 계기로 대외 경직성을 탈피할 수 있는지,대외 기본전략의 변화가 있는지에 따라 좌우될 것이며 당분간 워싱턴은 이런 변화의 기미를 판단할 때까지는 획기적인 대북한 자세 전환에 조심성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워싱턴=한남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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