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알고나 탑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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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얼마 전에 필자가 고속도로 톨케이트 앞에서 목격한 일이다. 2차선으로 꽉차서 달리던 차들이 톨케이트 앞에 오면 갑자기6∼8차선이 되면서 갈라지기 시작한다. 누구라도 줄이 비교적 짧은 곳을 찾아 표를 빨리 사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차선을 바꾸게도 된다. 그런데 중년의 한 오너가 여성이 운전하는 차 앞을 가로막고 큰 소리로 야단을 치고 있었다. 표를 사려고 길게 늘어서서 내용을 들으니 왜 갑자기 차선을 바꿔 접촉사고를 일으킬뻔 했느냐고 따지는 것이었다.
물론 미리 자신이 갈 줄을 결정하지 못하고 갑자기 차선을 바꾼 앞차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톨게이트 앞에서는 누구나 짧은 줄을 찾고싶어하는 것을 인정한다면 한마디의 경고정도로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요즈음 시내의 교차로에서는 가끔 차가 서로 엉켜 꼼짝도 못하고 몇 분씩 서있는 수가 많다. 차가 밀려 푸른신호가 켜있는 동안 미처 빠져나가지 못할 것을 알고서도 앞차의 꼬리를 물고 네거리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의 연희입체교차로와 같이 차가 많지 않았을 때 설계된 교차로는 한번 신호에 대기하고 있는 좌회전 차량을 다 소화하지 못해 교통경찰만 없으면 언제나 막히곤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운전자 스스로 양보의 미덕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지금은 가장 붐비는 길이지만 오래 전에는 미8군과 이태원길이 교차되는 곳에는 신호등이 없었다. 당시는 차가 별로 많지 않았으니 교차로에도 착한 차의 순서대로한길에서 한 대씩 진행하면 별로 교통장애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교차로 통행방법은 교통규칙에도 있고 필자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에도 자주 겪곤 했다. 아침 출근시간 몹시 바빠도 교차로에서는 일단 정지하고 오른쪽 차를 먼저 보내는 손신호에 미소로 답하는 운전자의 모습도 아주 아름다운 정경이다.
우리도 좀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도록 하자. 여유란 원래 한가할 때 내는 것보다 바쁠때 짜내는 것이 더욱 값지다. 출근길 1초가 아까운 골목 어귀에서도 서로 한대씩 상대방을 먼저 보내는 여유를 가지도록 연습해야 된다. 사회의 모든 규범은 습관이고 습관은 끊임없는 반복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이제는 교차로에서 푸른신호가 끝날 때까지 건널 수 없다고 판단되면 네거리 전에 미리 정지해 다른 차선의 흐름을 막지 않는 양보의 미덕이 절실한 사회가 되었다.
김천욱<연세대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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