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꿈과, 환상이 얽힌 기묘한 이야기 '야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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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와도 같은 서정적이고 신비로운 환상세계를 펼쳐 보이는 소설 《야시》(원제:夜市)가 이규원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야시》는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가 쓰네카와 고타로의 데뷔작으로, ‘역대 수상작 중 최고의 걸작’이라는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으며 제12회 일본호러대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보여주는 호러는 공포라기보다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보여주는 판타지와 그 맥을 같이 한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명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온다 리쿠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나오키상 후보에 올라 대형신인의 탄생을 알렸다.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일단 발을 들이면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환상의 공간.
그 세계와 연결된 자들의 슬픈 운명이 당신을 기다린다.

〈야시〉는 이 책에 함께 실려 있는 〈바람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사는, 실재하는 이 세계의 틈 어딘가에 존재하는 다른 세계, 그 세계와 숙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야시’는 ‘일단 발을 들이면 뭔가를 사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는’ 밤의 공간이다. 주인공은 몇 년 전 야시에서 동생의 영혼을 팔아 마법 같은 재능 하나를 샀다. 하지만 동생을 되찾기 위해 다시 그곳을 찾아가게 되고, 〈바람의 도시〉에서는 주인공이 죽은 친구를 살리기 위해 바깥 세계와는 단절된 이상한 길 위에 있다는 비의 사원을 찾아 헤맨다.

주인공들이 여행하는 세계는 수상쩍은 요괴들과 귀신들이 출몰하는 백귀야행의 세계이자 마치 생명체와 같이 살아 움직이는 세계, 우리의 세계와는 다른 시공간의 개념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이 다른 세계의 풍경을 작가는 풍부한 이미지를 통해 그려 보이고 있다. 짧은 두 작품에서 상기되는 이미지의 양들은 장편소설을 능가한다. 이 때문에 공포의 밤의 세계는 서정적이고 신비로운 꿈의 세계로 바뀐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판타지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장면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떠오를 정도로 다채로운 이미지들은 군더더기 없고 간결한 문장이 만들어내는 왠지 모를 애절함, 슬픔과 함께 작품을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몇 년간 호주나 홋카이도, 오키나와 등지를 오토바이로 여행했는데, 그 도중에 요괴, 괴물이 나오는 야시의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원래 나는 어릴 때부터 가끔 길을 잃었는데, 미아가 되면, 그 공간에서 좀처럼 빠져나갈 수 없다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런 공포가 이 이야기의 바탕에 있습니다.” ―쓰네카와 고타로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심사위원들이나, 이 책을 읽은 일본 독자들이 하나같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 부분은 ‘비주얼한 환기력’과 더불어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공포’다. 두 소설이 상기시키는 공포란, 다른 세계가 눈에 보이고 실재하는 이 세계와 공존하고 있다는 것, 그 다른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이 세계와 다르다는 것, 길을 잃은 자는 결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오는 것이다. 집 근처 어딘가에 요괴의 세계로 가는 통로가 열려 있고 두 세계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부터 공포이며, 이것은 내가 살아온 세계가 유일무이하다는 철석같은 믿음이 무너지는 데서 절정에 이른다. 또한 이 작품은, 기억에는 없지만 언젠가 내가 잃어버렸을 무엇, 언젠가 저질렀을 깊은 죄악을 예감하게 하는 오싹한 여운을 남긴다.

모던호러소설이냐, 동화적인 분위기의 환상소설이냐, 장르를 어떻게 구분하든 간에 판타지, 마법, 모험, 호러, 이 모든 것이 절정인 이 작품에서, 이런 참신한 감각과 여운을 발견하는 것은 독자 모두에게 분명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특히 기묘한 환상이 애절한 운명과 교차하는 바로 그 순간에는, 누구든 ‘야시’의 마법에 사로잡힐 것이다.

■ 지은이 : 쓰네카와 고타로
1973년 도쿄에서 태어나 다이토분카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일명 프리타 생활을 했고, 1996년부터 일 년쯤 오토바이로 호주를 여행했다. 귀국 후 잠시 오토바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다시 오키나와, 홋카이도 등지로 오토바이 여행을 했다. 여행중 요괴, 괴물이 나오는 이미지들이 떠올라 야시를 쓰게 되었다.
현재, 호주 여행에서 만난 아내와 함께 여행을 즐기며 오키나와에 살고 있다. 그의 대담하고 심플하면서도 정치한 문체는 이러한 라이프스타일과도 무관하지 않다. 스티븐 킹과 미야자와 겐지를 좋아한다는 그는 모던호러와 동화적 향수를 함께 느낄 수 있는 데뷔작 〈야시〉로 제12회 일본호러대상을 수상했고, 나오키상 후보에도 올랐다.
함께 실린 〈바람의 고도〉는 수상 후 처음 쓴 작품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이며 다시 한 번 평단과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 정가 : 9,000원

(조인스닷컴 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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