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호근칼럼

장미와 기관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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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쿠데타!'라고 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우리에게 태국에서 발생한 쿠데타는 조금 묘한 구석이 있다. 유혈사태는커녕 거리도 평온하다. 그런 가운데, 군부가 부패정치인 숙정 계획을 발표하자 탱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시민들도 생겨났다. 태국의 수산두싯 교육대학 여론조사에 의하면, '쿠데타 환영'이 84%, '향후 정국이 나아질 것'으로 보는 낙관적 견해가 74%를 차지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여기에 방콕발 한 장의 스냅 사진이 쿠데타를 악몽처럼 여기는 우리에겐 너무나 낯설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시민이 준 듯한 장미꽃을 기관총에 꽂고 태연히 신문을 읽고 있는 쿠데타군의 모습. 이거 방공연습인가, 의아할 정도다.

장미와 기관총, 결코 궁합이 맞지 않는 두 사물의 어울림. 장미는 사랑.열정.시샘 등 애절한 연정의 표상이고, 기관총은 서늘한 공포감을 자아내는, 그것도 수십 명의 생명을 단숨에 주검으로 날려보내는 비정한 화기(火器)다. 그런데 한데 어우러져 쿠데타의 폭력적 현실을 낭만적 이미지로 바꿔 놓고 있으니 이를 '태국풍'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장미는 종자가 많은 만큼 꽃말도 다양한데, 그중에서 빨간 장미(Madien blush rose)의 꽃말은 '내 마음 그대만이 아네'이다. 혹시 쿠데타군의 기관총에 이 꽃이 걸렸다면 그것은 영락없이 은밀한 연애편지다. 그러나 기술문명이 낳은 폭력의 명기(名器)인 기관총이 그 사랑 고백을 영원히 기억할까. 변심의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국왕을 옹립하고 민주주의를 구제하라'는 시민 결재(決裁)가 기관총을 통해 실행되는 기이한 현상은 의미심장한 정치학적 연구 대상임에 틀림없다.

따지고 보면 태국의 군부는 독재시대의 한국 군부처럼 독하지도 않고 시민들을 피범벅으로 진압한 경력도 없으니 쿠데타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법도 하다. 국왕을 정점으로 한쪽에는 시민의 사랑이, 다른 쪽에는 군부의 충성심이 버팀목을 이룬 태국 특유의 삼각 구도를 해치지 않는 한 쿠데타는 용납됐다. 말하자면 시민과 군부의 매개체인 국왕을 연결고리로 '장미와 기관총'이 어우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고착된 이 삼각 구도에 균열이 발생할 징후는 점차 짙어졌다. '태국판 6.29'로 불리는 1997년 민주헌법 개정 이후 시민 이익을 결집하는 대중정당이 들어서자 군의 정치적 입지는 한층 좁아졌다. 한국의 김영삼 정부에서 경험했듯 시민사회의 약진과 군의 후퇴는 민주화의 성패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다. 여기에 대중정당을 장악한 탁신 전 총리가 군 권력의 병참기지인 국공기업을 민영화해 왔다고 생각해 보라. 투쟁전선이 치열해지지 않겠는가. 권력 이동에는 부패가 가세하는 법. 결국 탁신 정권의 부패가 퇴각하는 군부를 돌려세웠다. 외신에 의하면 군부는 벌써 쿠데타의 공통 메뉴인 집회 금지와 언론 통제를 단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기관총을 들이대는 이런 방식으로 민주주의가 배양될 것인가.

민주주의에 가장 우호적인 요건, 또는 쿠데타 최대의 적은 경제성장과 교양 있는 중산층의 확대다. 미국의 정치학자 셰보르스키가 내놓은 소위 '쿠데타의 경제지대론'에 의하면, 쿠데타는 국민소득 2000달러 이하에서 빈발하고 성공 가능성도 크지만, 6000달러를 넘는 순간 자취를 감춘다는 것이다. 79년 12.12, 전두환 소장이 특전사와 기갑부대를 동원했을 때 우리의 국민소득은 1600달러였고, 그가 한 번 더 일을 저지르고 싶었던 87년에는 이미 4000달러를 넘었다. 국민소득이 7000달러에 달하자 그는 백담사로 유배 갔다.

태국의 일인당 GNP는 2749달러(2005년)여서 여전히 쿠데타 발생 지역에 놓여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 수치가 6000달러를 넘어 시민 권력이 확장되면 결국 퇴각할 수밖에 없는 군부를 안쓰러워하는 기관총은 장미를 달아준 시민에게로 슬며시 총구를 돌릴지 모른다. 그때 기관총은 국왕에 대한 충성심은 물론 연애편지의 기억을 잊을 것이다. '장미와 기관총'의 화합은 태국 특유의 정치 환경 탓이지만 태국에서도 한시적인 현상인 듯하다. 그 사진이 풍기는 낭만적 분위기의 배경에서 재앙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이유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