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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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중학교 2학년이 된 옆집 순득이가 통통한 얼굴에 환한 미소를 담고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며 신이 나서 재잘댄다. 『노래와 춤, 게임을 골고루 할줄 알아야 되는데』라며 사뭇 분주한 모습을 보니 물오른 버들가지처럼 싱그럽기도 하고 흐드러지게 핀 환한 개나리꽃 같기도 해서 괜히 나까지 가슴이 설렌다.
기계모 심는데 필요한 모판에 흙을 담으며 며칠전 남편의 어릴적 얘기를 생각해본다. 그땐 모두 사는것이 넉넉지 않아서 집집마다 끼니걱정을 했다.
커다란 재를 두개씩 넘고 이십리 산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는데 기차 한번 타보는것이 소원중의 제일 큰 소원이었다고 한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면 경북봉화군 법전역을 꼭 지나야 한다.
석탄을 가득 실은 화물열차가 정차하고 있으면 옷이랑 얼굴이 까매지도록 놀다 깜깜한 밤에 집에 오면 소골을 베지 않고 놀다가 왔다고 종아리에 멍이 들도록 아버님께 맞고 다음날이면 또 그러고… (난 얘기만 듣고도 가슴이 아파 그날 저녁내내 남편의 종아리를 만졌다).
기차 타보는 것이 소원인 남편에게 기회가 왔다.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아버님께선 먹고 살기도 힘든데 여행은 무슨 여행이냐시며 꾸중만 하시더란다. 아침밥도 굶고 앉아 어머님께 보내 달라고 조르고 졸라 차비만 달랑 얻어들고선 이십리 산길을 발뒤꿈치가 엉덩이에 닿도록 달려오니 열차는 떠나고 배웅나온 친구 어머님께서 『니 인자오나, 쪼매만 더 일찍오제. 기차 금방 떠났데이』하더란다.
기차꼬리(?)부분이 산모퉁이를 돌아가는걸 보며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고, 남편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않다고 씁쓸하게 얘기한다. 남편은 『요새 참 살기좋제. 관광버스 댕기는거 봐래이. 올가을 추수해놓고 놀러 한번 가제이』했다. 사실 우리 부부는 그 흔한 관광여행 한번 못해봤다. 남편이 기차를 처음 타본것은 열여덟살 되던해 충북단양 사시는 큰형님 만나러 가던 날이라고 했다. 그 전날밤엔 기차를 탄다는 설렘에 밤을 꼬박 새웠다.
요즘에는 하루에도 수십대의 관광버스가 집앞을 지나다닌다. 그럴때마다 남편의 어릴적 모습과 꽥꽥 검은 연기를 토해내며 힘차게 달리는 옛날 화물열차가 관광버스 꽁무니에 겹쳐진다고 했다. 순득아, 수학여행 다녀와서 즐겁고 아름다운 얘기를 재잘재잘 들려주렴.

<경북봉화군법전면법전리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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