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 집배원 “검은 땀방울 30년”/태백우체국 이희태씨의 외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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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폭염ㆍ폭설 마다않고 “인정”전달/다리힘 멀쩡한데 정년이 눈앞에
검은 땀방울 30년. 해발 6백50m의 태백탄광촌 검은 탄전길을 30년동안 오르내린 집배원 이희태씨(57ㆍ강원도태백우체국)는 「처음 계획3년」이 30년이 돼버린 지금 지나온 길이 탄가루처럼 험난했지만 정년1년여를 앞두고 오히려 「정년공포」속에 막바지 걸음이 더욱 바빠졌다. 『영하20도를 오르내리는 추운 겨울엔 바람에 날리는 탄가루때문에 걸음을 떼기도 힘들고,여름에는 흐르는 땀방울에 탄가루가 들러붙어 나중엔 검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지요.』
거기에다 비라도 오면 장화없이는 도저히 다닐수 없는 곳이 바로 태백이다.
「한 3년만 하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이씨가 우편낭을 처음 멘것은 61년3월.
『찌든 가난으로 국민학교밖에 못나온 탓에 붙든 직업이지만 하루 이틀 정이들고 하는일에 애착이 생겨 결국 청춘을 다 바치게 됐다』고 했다. 『허리춤까지 빠지는 눈길을 경우 헤집고 기쁜소식을 전했을때 옥수수 막걸리 사발을 건네며 추위를 녹여주는 따뜻한 인정 앞에서는 뿌듯한 보람과 함께 눈길을 헤맨 피로도 단번에 봄눈 녹듯 사그라들고 맙니다.』
지금은 태백우체국의 분국이지만 그때는 감독국이었던 장성우체국(현재의 화광동우체국)의 집배원은 이씨를 포함,고작 3명에 불과했다고.
당시 3명이 담당했던 구역은 황지ㆍ철암ㆍ장성ㆍ화광동등으로 자전거도 제대로 없이 다니던 때라 1백50리 되는 구역을 돌기위해 우체국을 나서면 다음날 밤 늦어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다니는 차도 드물때라 발이 보배라며 1백여리를 마다않고 걸어야 했다. 어쩌다 벌목꾼들의 트럭이라도 얻어타게 되는 날은 무척 운이 좋은 날이었다.
태백우체국에서 이씨의 별명은 「보리밥할아버지」. 연말연시 폭주하는 우편물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동려들을 위해 그의 집에서 준비해오는 따뜻한 보리밥 야식은 태백우체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
매년 한겨울 이씨의 부인 권선례씨(56)가 나르는 보리밥 한술이 우편물 홍수속에 빠진 동료들의 기운을 돋우는 것이다.
이씨의 30년 외길인생을 가능케 한 것으론 부인 권씨를 비롯한 가족들의 도움을 빼놓을 수 없다.
부인권씨와 장남 진교씨(29ㆍ강원대졸)등 2남3녀의 자녀 모두 틈만 나면 이씨를 도와 「아르바이트」집배원 노릇을 해왔다. 특히 우편물이 쏟아지는 연말에는 춘천에서 대학에 다니던 장남까지 집에 내려와 광산촌 아파트단지를 돌며 우편물을 배달하곤 했다.
『오늘의 우리 가정을 가능케한 것은 이 우편행낭 덕입니다.』
초임때 7천원 안팎이던 월급이 요즘에는 수당까지 합쳐 80만원을 웃돌아 2남3녀의 자녀를 모두 대학ㆍ고등학교까지 보냈다.
그러나 이씨는 『요즘 왠지 1년여후 우편낭을 내려놓을 일을 생각하면 서글퍼진다』며 『앞으로 4∼5년은 거뜬히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정년에 떠밀려 그 따뜻한 인정들을 더이상 맛볼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애태우고 있다.<정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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