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계획 세울 수 있는 일자리가 중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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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으로 있을 때는 미래가 불안했는데 정규직으로 전환되고나니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고, 무엇보다 장래에 대한 확실한 꿈이 생겼어요."

하나은행 등촌2동 지점에서 일하는 이재연(26.여)씨는 요즘 직장 생활이 즐겁다. 올해 6월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월급이 예전의 두배로 오르고 복지혜택도 나아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2004년 4월 하나은행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청년 취업난으로 번듯한 직장의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일단 직장을 잡고보자는 마음에 입행했지만 비정규직은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에 비해 대우가 나빴다. 연봉은 1300만원 정도였고, 경력이 쌓여도 임금 상승폭은 미미했다. 승진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은행에서 비정규직 사원 중 근무성적이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씨도 열심히 실무능력시험을 준비한 결과 약 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씨는 "예전에 계약직으로 근무했을 때는 중산층에 진입할 수나 있을까하는 회의가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조직에서 성공하겠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380명, 올해 191명의 비정규직 사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근속기간이 1년 이상인 계약직 가운데 실무능력시험과 근무성적을 평가해 정규직을 뽑는다. 하나은행은 정규직 전환제도가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강한 동기를 부여하고, 업무능력과 고객서비스를 한 차원 높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인터넷 취업포털 '잡링크'가 비정규직 사원을 고용하고 있는 기업 108개사를 대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계획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기업의 49%가 '정규직 전환계획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일자리의 질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05년 8월)'를 바탕으로 추산한 비정규직 규모는 840만 명으로 전년보다 25만 명 늘었다. 전체 임금 노동자의 56.1%나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2003년 784만 명(전체 근로자의 55.4%), 2004년 816만 명(55.9%)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비정규직의 월 임금은 2004년 정규직의 51.9%에서 2005년엔 50.9%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3분의 2 정도는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에도 가입하고 있지 않다. 병이 나거나 일자리를 잃어도 최소한의 안전망이 없다는 뜻이다.

정부는 간병인 등 빈곤층 일자리(자활근로)를 지난해 6만 개에서 2009년엔 10만 개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일자리는 월 수입이 대부분 100만원에도 못미친다. 자활에 성공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벗어난 자활 성공 비율은 자활 사업을 시작한 2001년 9.5%에서 지난해엔 5% 밑으로 떨어졌다. 일자리의 질을 높이지 않는 한 정부가 마련한 일을 열심해 해봐야 빈곤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 특별취재팀=고현곤(팀장), 양영유.정철근(사회부문), 나현철.김준술.손해용.임장혁(경제부문), 장정훈(디지털뉴스부문), 변선구.최승식(사진부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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