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천정배 공세'에 끙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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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청와대가 통합신당 천정배(千正培)의원의 공개적인 인적 쇄신 요구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千의원은 이광재(李光宰)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의 사표 제출 이후에도 청와대를 향해 "쇄신 문제는 일회성으로 끝날 일이 아니고 위기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될 진행형"이라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통합신당 측은 李실장 외에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유인태 정무수석.박범계 법무비서관 등 세 명에 대한 인사 조치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千의원의 공세에 대해 청와대는 공식 대응은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속으론 끙끙 앓는 중이다. 상대가 다른 사람도 아닌 '쇄신 전문가' 千의원이기 때문이다. 그는 분당 이전의 민주당 시절부터 여러 차례 쇄신.정풍운동을 부른 주역이었다. 더욱이 현역 의원 중 최초로 노무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한 초창기 멤버다.

청와대 내부에선 "쇄신을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재신임 국민투표 전에는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냐"는 불만 섞인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통합신당 측의 추가적 인사 조치 요구에 대해선 "재신임 정국에서 대통령에게 무장해제하라는 것"이라는 반응까지 들린다.

다급해진 유인태 정무수석은 20일 밤 통합신당 김원기 창당주비위원장.김근태 원내대표 및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와 긴급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서 柳수석은 "쇄신 문제는 재신임 국민투표가 마무리돼야 가능하다"고 통합신당 중진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그러나 千의원은 간단히 물러날 태세가 아니다.

千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렇게 말한(재신임 국민투표 후 쇄신) 사람들이 개편 대상"이라고 했다.

그는 전날엔 "李실장 사퇴 후 '이번에 나는 괜찮겠지'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했다.

千의원은 "쇄신 요구는 내 개인 문제가 아니고 신당 의원총회에서 사실상 만장일치로 공감한 내용"이라고 대표성을 부여한 뒤 "최소한 진지하고 무게를 실은 협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千의원의 쇄신 요구가 계속되고, 신기남.정동영 의원 등 千의원과 가까운 과거의 쇄신파 의원이 가세하면 가뜩이나 빈약한 집권세력 내부가 심각한 균열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청와대 내 386 참모그룹 사이에서도 "千의원과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면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편 千의원에게 직격탄을 맞고 사표를 제출한 뒤 강원도에 머물고 있는 이광재 실장은 내년 총선 출마설 등이 흘러나오자 측근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자숙하고 있으며 총선 출마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알려왔다.

강민석 기자<mskang@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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