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효숙 후보자 스스로 물러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다시 보류됐다. 여권이 '헌정 공백'이라고 말한 상황을 더 이상 오래 끌지 않도록 이런 사태를 불러온 노무현 대통령과 전 후보자 스스로 빨리 결단을 내려 주기 바란다.

열린우리당과 야 3당은 정치적 타협을 모색했지만 한나라당이 거부했다. 교착 상태를 풀어 보려는 야 3당의 노력은 평가하지만 정치적으로 풀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다. 이번 일은 후자에 속한다. 위헌 여부를 심판하는 헌법재판소의 수장을 임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헌재소장은 그의 존재 자체가 헌법 준수의 상징이 돼야 한다. 아무리 급하다고 위헌 시비로 상처투성이인 인물을 임명한다면 임기 내내 정당성 논란에 시달릴 것이 뻔하고, 그 부작용은 '헌정 공백'이라고 주장하는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억울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1987년 헌법재판소를 신설하는 헌법 개정 이후 세 번의 헌재소장을 모두 현직 재판관이 아닌 사람으로 바로 임명했다는 전례를 들어 야당의 발목 잡기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그 절차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과거에 어떠하였건 그것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안 그 순간부터 바로잡는 게 옳다. 당장 정치적으로 부담은 떠안을 수 있겠지만 안정적인 헌법 질서를 세우는 길이 우선이다.

전 후보자를 임명하는 과정에는 절차적 문제만 있었던 게 아니다. 헌법에 헌법재판관의 연임을 허용하고 있기는 하나 임기 중에 사퇴시켜 새로운 임기를 다시 시작하게 하는 것은 법 정신에 맞지 않는 꼼수다. 그런 방법으로 3년에 그칠 헌재소장 임기를 6년으로 늘리는 것은 차기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하는 일이다. 정치적 의도가 분명한 이런 편법으로 임명된 헌재소장이 어떻게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으며, 그가 내린 결정에 대해 국민이 승복할 수 있겠는가.

야당이 반대하는 가운데 국회 동의 절차를 밀어붙인다면 전 후보자가 떠안을 부담은 더욱 커진다. 민주.민노.국민중심당의 주장대로 법사위의 헌법재판관 청문과 본회의의 헌재소장 임명동의라는 '적법 절차'를 거치더라도 그것은 정치적 해결에 불과하다. 전 후보자가 안고 있는 법적 흠결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사실 지금까지 논란의 대상이 된 것만으로도 전 후보자는 헌재소장으로서 적절치 않다. 여야가 합의해 처리한들 누군가 전 후보자에 대해 직무 정지 가처분 신청이라도 제기하면 어떻게 할 건가.

헌재소장이라고 완전무결한 인간일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임명 절차에서 위헌 시비가 제기돼서는 곤란하다. 노 대통령은 새로운 헌재소장 후보를 물색해추천하는 수밖에 없다. 더 좋은 방법은 전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서 노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최소한의 체면을 유지하는 일이고, 헌재소장 후보자로서 헌법을 지키는 모범을 보이는 길이다.

이런 혼란을 야기한 사람에 대해서도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이 이처럼 어이없는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엄중히 경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