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인상제한 문제 없나?] “미래 투자 발목 잡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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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대학들은 등록금 인상이 사회 이슈화되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1990년대 초반에는 등록금이 해마다 10% 이상씩 인상됐기 때문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등록금 인상에 대해 학생이나 사회에서 다소 민감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등록금 인상 제한법’에 대해서도 같은 반응이다. 대학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학의 자율권 침해라는 인식이다.

이번 법안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바로 적립금이다. 당해연도에 쓰지 않은 돈은 적립금 형태로 재단에서 운용하고 있는데 학생 측은 이를 등록금 재원으로 쓰자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사학재단 전체의 적립금 규모가 5조원에 달한다”며 이를 등록금 재원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실제 이화여대의 경우 5000억원이 넘는 적립금이 있고, 연세대·숙명여대·한양대·건국대 등도 각각 수백억원 이상의 적립금이 있다.

정치권이나 학생들의 주장과 달리 대학에서는 이 돈이야말로 소모성 경비로 쓸 것이 아니라 대학의 질적 향상을 위해 투자할 돈으로 보고 있다.

한 사립대학 교수는 “기부자나 모금에 참여한 사람들은 특정한 목적에 동의해 돈을 냈는데 그 목적과 상관없이 돈을 쓰면 다음에 누가 우리를 믿고 기부하겠나”고 반문했다. 돈이 다 꼬리표가 있는 것인데 함부로 쓸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또 “적립금은 어디 도망가는 돈이 아니다. 나중에 결국 다 대학을 위해 쓴다. 그런데 지금 당장 쓰자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또 일부 대학은 적립금의 이자로 학교 운영비나 연구비로 쓴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영탁 중앙대 조정기획실장은 “최근 몇 년 동안 대학들은 학교발전기금 등으로 들어오는 기부금을 통해 적립금을 늘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탁자 뜻대로 써야 하는 ‘지정발전기금’이 기부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 마음대로 운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등록금과 물가가 무슨 관계?”

물가상승률과 등록금 인상률을 연동시킨 것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 전략기획처장은 “등록금 인상과 물가상승률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상품으로 보면 교육 서비스 상품인데 그게 왜 전체 물가하고 같은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상품마다 특성이 다르고, 지난해에 좀 더 많이 투자해 질을 높였으면 당연히 더 높은 가격을 받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최근 다소 높은 등록금 인상률에 대해서도 “최근 교육 경쟁력 강화 주장이 만연하고 있고, 교육부도 대학 경쟁력 강화정책을 펴면서 교수 1인당 학생 수를 줄이고, 시설 및 설비 투자를 강화하라고 하는 마당에 등록금을 규제한다는 건 난센스”라고 주장했다.

한 사립대학 대외협력처장은 “지금 대학은 국내 경쟁보다 글로벌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러려면 향후 수년간 막대한 재원이 투자돼야 하는 마당에 정치권에서 도와주진 못할망정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글로벌 경쟁을 하는 대학에 국내 물가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는 말도 했다.

등록금 수준에 대해 대학 측은 규제할 정도로 높은 것이 아니라는 반응이다. 미국 사립대는 한국의 4~5배 정도 되고, 주립대도 한국 학생이 유학 갈 경우 3배 이상 비싸다는 것이다. 그런 현실은 도외시하고 단순히 한국 대학이 경쟁력이 없다는 식의 비교는 납득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학교 측은 학교의 재정 사용내역 공개에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미 홈페이지와 학교신문을 통해 다 공개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연세대의 신승환 기획실장은 “홈페이지에 5년치를 다 공개하게 돼 있다. 그 외에도 학생 대표들이 구체적인 자료를 요청하면 열람하게 해 주고 있다”고 했다.

‘건물 신축 등 지나치게 하드웨어에만 투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도 불가피성을 피력하고 있다. 신 실장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항상 학교 시설이 열악하다고 아우성이고, 이공계는 공간 부족이나 기자재 부족 얘기가 많다.

그래서 시설에 투자했더니 이번엔 또 건물만 짓는다고 비판하면 어떡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학교 건물을 지으면 학교에 돈이 되는 게 아니다. 건물은 주로 학생과 교직원이 쓰고, 재산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 대학 부지가 민간에 팔릴 때 건물은 값을 못 받는다. 어차피 개발할 때 부수기 때문이다.

그는 “등록금 인상 제한을 하게 되면 학교도 문제지만 학생이 더 문제다. 현실적으로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데 돈이 모자라면 학교는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장기적으로 보고 학교에 투자할 때다. 그래서 요즘 학교마다 외부 기금을 모으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등록금으로 돈 번다는 것은 오해”

사학에서는 각종 수익사업이나 재원 조달 방안이 한정된 것도 불만이다. 대표적인 것이 기여입학 제도다. 한 대학 교수는 “미국은 기부문화가 발달해 있기도 하지만 기부자에 대한 각종 인센티브가 활성화돼 있다. 기여입학제가 대표적인 것이다. 우리는 아직 기여입학제의 ‘기’자도 꺼내기 힘들다”고 아쉬워했다.

서강대 심종혁 기획처장은 “이제 기업들도 과거처럼 대학에 함부로 돈을 주지 않는다. 재단도 많이 각성해 스스로 수익사업을 하려 하고 있지만 이 또한 마땅치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서강대의 경우 SLP라는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수익사업을 하고 있고, 건물 임대사업도 하고 있다.

학교법인이라는 특성상 수익사업 업종에 여러 가지 제한이 따르게 마련이다. 영리법인이 아닌 대학의 특성상 마땅한 수입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단 전입금을 늘리라는 요구는 재단을 파산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학 측은 “이미 교육비 환원율로 보면 대학은 학생들에게 등록금 이상의 혜택을 주고 있다”면서 “문제가 있는 학교를 관리감독하는 대신 법으로 일괄규제한다는 생각은 사학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이 있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 시내 한 사립대 기획실장은 “법안의 내용을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율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등록금으로 대학이 돈을 남긴다는 생각은 지극히 일부 사학의 비리를 보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난 지방의 사립대들이 저지른 비행을 마치 사학 전체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는 또 “이미 상당수의 사학이 학생들과 등록금이나 학사 운영 전반에 대화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아직 충분한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 좋은 사례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 자율적으로 등록금 협의 등이 가능할 텐데 왜 이런 법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석호 기자 luk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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