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고장에선] 迷路속 헤매는 행정구조 개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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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민선 3기 제주자치의 최대 화두로 꼽히는 '제주형 행정구조 개편'이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현행 3단계 행정구조(도-시.군-읍.면.동)를 과감히 개편, '국제자유도시 제주'의 효율적 행정시스템을 마련하자는 뜻이지만, 그 구상이 얼굴을 드러내면서 회의적 시각도 만만찮게 나오고 있다.

"지방자치 본뜻과 역행하는 어이없는 발상"이라는 시각과 "행정 효율성을 높히기 위한 시스템 개혁"이라는 시각이 맞서고 있다.

◇ 가시화되는 구상=5~6년 전부터 거론되던 행정구조 개편 구상은 올 초 행정개혁추진위원회(위원장 조문부 전 제주대 총장.이하 행개위)가 설치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행개위는 지난 4월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개편 방안 용역을 맡겼고, 최종보고서(안)가 마련돼 다음달 중순이면 구체적 제안이 나온다.

지방행정연구원은 단일 계층의 광역체제로 '제주특례시'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시.군을 폐지하고 광역시에 읍.면.동을 두거나▶현행 4개 시.군(제주.서귀포시, 북제주.남제주군)을 행정구로 전환하는 방안,▶4개 시.군 경계를 조정해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을 동제주군과 남제주군으로 개편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일부 기초단체장은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으로 바뀌게 되고, 대 주민 행정서비스 시스템도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도는 연내 도민 설명에 이어 내년 초 도민투표 등 여론확인을 통해 내년 상반기 정부와 협의 및 가칭 제주자치특례법(안) 마련한 뒤 연말에 확정한다는 일정을 잡아 놓았다.

◇ "누구를 위한 개편?"=시민단체들은 "주민의 생활편의를 위한 서비스 확대와 자치.참여의 확대 등에 대한 구상은 보이지 않고, 목적도 불분명한 관료사회의 자의적 경계획정 논의가 판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제주참여환경연대 등 8개 시민단체 등은 최근 '자치개혁과 지방분권을 위한 제주협의회'를 구성, 지난 14일 도민토론회를 여는 등 논리 반박에 나서고 있다. 고유기 환경연대 사무처장은 "행정구조 개편 방향이 제대로 된 자치의 실현이 아니라 국제자유도시 운운하며 투자자에 대한 통합행정서비스만을 고려, 도민은 안중에도 없다"며 "원점부터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개편논의,배경부터 재환기해야=여러 지자체와 경쟁하기보다 '특화된'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 추진했던 '제주특별도 구상'등 목표에 대한 이해 재정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특별한' 지위보장의 한 방편으로 거론되던 시.군 폐지 등이 돌연 목표로 둔갑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또 기초 자치단체장의 임명직 전환으로 광역 자치단체장의 권한 확대가 예상되고 자치정신에도 역행하는가 하면 도.농 격차가 더 커지는 역기능을 소홀히 다룬다고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양영철(행정학)제주대 교수는 "부작용에 대한 면밀한 고려와 뚜렷한 목적의식도 없고,무엇이 지방의 이익인지에 대한 관점도 불분명한 상태로 '개편'논의만 판을 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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