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고시촌 3천여명 「벌집」서 밤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고시의 메카」 서울신림9동 동사무소 뒤편 고시촌이 다중주택지구로 지정됐다.
인근 주택가로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것을 막고 일정한 시설기준을 둬 양성화하기로 결정된 이 일대는 이제 명실상부한 고시촌으로 정착하게 된 것.
매년 사법고시 합격자 배출률 30%를 자랑하는 고시의 산실은 5만여평의 언덕을 따라 들어선 1백20여 대형 하숙집.
한집에 20∼50명씩 모두 3천여명의 고시준비생들이 오늘도 내일의 영광을 위해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곳 고시촌의 역사는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언덕꼭대기에 20∼30실 규모의 「법우회관」 「관악고시원」이라는 대형 하숙집 두곳이 들어선 것이 효시.
이후 해마다 주택내부를 개조한 이른바 「고시원」이 우후죽순격으로 늘었고 80년대 들어서는 전문건축업자들에 의해 집단하숙용 건물이 무더기로 지어지면서 언덕 아래까지 들어찼다.
연건평 1백평의 3층주택을 지을 경우 2평미만의 방을 50실 정도 들일수 있어 한달에 1인당 13만원을 받으면 인건비·부식비등을 제하고 3백만∼4백만원은 고스란히 주인 손에 떨어진다는 것이 주변 복덕방의 설명.
식구들이 많다보니 뒷바라지 비용도 엄청나 이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신림고시원은 한달 쌀 소비량이 13가마, 김치 8백포기, 전기·수도요금 1백만원에 이른다.
이곳을 찾는 고시준비생 들은 대부분 대학을 졸업한 지방출신.
지난해 지방 K대법대를 졸업한 홍유석씨(27)는 『다른 곳에 비해 하숙비가 3만∼4만원 정도 싼편인데다 시내중심가와 떨어져 있고 조용해 고시준비에는 적격』이라며 『특히 서울대와 가까이 있어 청강은 물론 수험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고시촌을 예찬한다.
과거에는 고시생이 아닐 경우 분위기를 해친다고 고참들에게 쫓겨나기도 했지만 요사이는 대입재수생에서 일반직장인에 이르기까지 입주층도 다양해졌다.
14년째 신림고시원을 운영하는 김상정씨(58)는 『입주기간은 1∼2년이 대부분이지만 집착이 강한 상습낙방생들 중에는 10년가까이 머물기도 해 쉰살이 넘은 초로의 만학도까지 있다』고 했다.
고시촌의 최연장 합격자로는 4년전 사법고시에 합격한 당시 39세의 유모씨로 기록돼 있다.
고시촌 주인들에게 가장신경 쓰이는 시기는 합격자 발표가 있는 8, 9월.
합격자는 「합격주」로, 낙방자는 「위로주」로 며칠간 동네 전체가 술에취해 주사의 폭풍이 지나갈 때면 주인들은 행여불상사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가슴을 졸여야 한다.
또 이 시기가 입주자 교체기.
『다시 태어나도 이곳만은 오지 않겠다』고 짐을 싸 떠나는 불합격자들도 11월께면 『그래도 이곳 밖에 없다』며 다시찾는 것이 고시촌의 풍속도.
책걸상을 놓으면 한사람이 빠듯하게 누울 공간밖에 없는 방에서 낮밤을 뒤바꿔가며 희미한 형광등 불빛아래 「나의 투쟁」을 벌이는 고시생들에게는 최근 몇년사이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부정적 현상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입주경력 3년의 강일환씨(32)는 『고시촌 입구에 고시생들을 겨냥한 만화가게·술집·당구장이 급격히 늘면서 면학분위기도 점차 흐려지고 있다』며 『특히 복지에는 아랑곳 없이 하숙비만 올리려는 주인들의 각박한 인심에 낭만마저 사라져간다』고 말했다.
선거철에는 오피니언 리더격인 고시생들의 의견에 목표가 좌우돼 선량후보자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는 고시촌의 숙원은 휴식처와 체육공간의 마련.
신성구동장은 『다중주택지구 지정으로 집주인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만큼 고시원 주인들의 협조를 구해 운동시설과 휴식시설을 마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효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