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농민들 「목소리」높아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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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전국을 몰아치고 있는「지방화 시대 바람」은 농민들의 영농활동에도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수입개방 집단항의>
특히 외국산 농산물의 수입개방은 국내 농산물 값의 폭락을유발, 농민들이 조직적으로 자구책을 강구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지금까지 행정기관의 일방적인 지시에 따라 재배농작물과 재배면적을 정했던 농민들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고 행정관청 역시 옛날 식의 강압일변도 농정을 펼치지도 않는다.
농민들은 농산물 값등 잘못된 농정행정에 대한 집단항의 외에도 자기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좋은 값에 팔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지방화시대에 발맞춘 농민들의 조직적인 움직임 등을 살펴본다.
◇과거의 재배 작목·면적결정=몇년 전까지만 해도 재배할 작물이나 면적은 중앙에서 배정된 계획에 따라 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농민과 농업관계 공무원들 사이에 적지않은 마찰이 일기도 했지만 농민들의 주장은 거의 무시됐다.
중앙에서 계획이 완성되면 도와 일선 시·군, 읍·면을 거쳐 마을별로 작목별 면적과 재배농작물이 배정되는 중앙행정기구의 하향식 농정이 이루어져왔다.
이 과정에서 농민들은 각 마을의 영농회 의결형식을 빌려 재배농민을 결정하는 자율권만을 행사했을 뿐이다.

<〃빚지기 딱 알맞다〃>
중앙의 생산계획량을 배정받은 각 시·군은 그 전 해의 작황을 참조해 예상량을 최종 결정하고 이에 따라 지도·계몽에 주력했다.
그러나 중앙행정기관 중심의 농산물 생산량 조절계획은 계획수립과정에서 각 지역의 여건이나 주민들의 의사·농촌실정이 무시되기가 일쑤여서 탁상행정의 대명사격으로 농민들에게 외면·불신 당해 왔다.
일부농민들 사이에서는 심지어『면사무소나 군에서 시킨 대로 하면 빚지기에 딱 알맞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행정기관의 농업정책이 이처럼 심하게 불신 당하게 된 것은 관청의 작물별 생산계획량과 실체생산량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고 있기 때문이다.
◇작목·면적결정 새바랍=이처럼 계속된 악순환은 농민과 관청 모두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우선 행정당국은 담배·인삼 등 전매품을 제외하고는 재배면적이나 작목 선택을 강력히 규제하려 하지 않는다.
60년대는 물론 70년 대까지도 계속됐던 강제지도사례는 이제 없어졌고 그 같은 일에 농민들이 순응하지 않을 만큼 농민의식도 바뀌었다.

<작목 선택 규제 안해>
이 때문에 행정기관에서는 강제 지도했을 경우 풍·흉작에 따른 각종 책임이 되돌아 올 것을 우려해 아예 적극적 지도를 펴지 않으려는 지극히 바람직하지 못한 풍조에 젖어들고 있다.
반면 농민들은 각 농가의 수익증대를 최우선으로 잡아 지난해의 시세나 소비자들의 선호등을 감안해 스스로 작목과 재배면적을 정하게 됐다.
이 때문에 국가 전체적인 면에서 보면 주먹구구식이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농민의 자구노력=경기·인천지역 농민들은 재배 작목별 반을 만들어 토론회와 세미나등을 자주 열어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남인천 화훼작목반(반장 장성덕)은 87년3월 발족한 후 인천시 남촌동118일대 1만5천 여평의 부지에 관엽수와 각종 분재·선인장·정원수 등 4백 여종의 화훼류를 심어 지난해엔 1억5천 만원의 소득을 올렸고 올해는 5억 원 가까운 소득을 예상하고 있다.
농작물 수입개방 등에 재빨리 대처한 결과가 빚은 알찬 결실이었다.
충남 당률군에서는 농민들이 쌀값 제값 받기 운동을 펴 서울농산물 가락시장으로의 출하를 피하고 당률읍농협과 부평농협이 자매결연을 맺어 인천·부평 등 경기지역으로 직접 출하시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이익을 보게됐다.
배 과잉생산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 충남 천원군은 서주우유 회사와 배 납품계약을 체결했는가 하면 이달 27일부터 4일동안 대전의 동양백화점에 「성환배 직판코너」까지 설치해 소비자와의 직거래를 통한 타개책을 찾기로 했다.
경남 김해·산청 등지의 농민들은 부락영농회가 중심이 돼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무공해 쌀」을 생산, 도시지역에 직접 판매해 짭짤한 재미를 보아왔다.
농민들의 이러한 자구책에 발맞춰 올해부터는 농협 김해군 지부에서 토양오염이 비교적 심하지 않은 상동면일대 농민들을 대상으로 무공해 쌀 생산 정식계약재배를 할 계획을 세웠다. 이밖에 농민들은 각 지역 영농회나 부락단위로 공동생산·공동판매를 통해 스스로의 권리를 찾고 이익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지방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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