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서 체면 구긴 루이뷔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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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프랑스의 대표적 명품 브랜드인 루이뷔통이 체코에서 '망신'을 당했다. 체코 수도 프라하에 있는 국보급 다리에서 자동차 경주 마감 행사를 열려다 '돈을 아무리 준다 해도 일반인들의 통행을 막는 독점적 행사는 안 된다'는 쓴소리를 들으며 거부당한 것이다.

프라하 시청이 기업의 사교 행사를 위해 빌려줄 수 없다고 거부한 다리는 프라하 시내에 있는 카를교. 14세기에 만들어진, 중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다리로 매일 수천 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체코의 국가적 상징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이뷔통은 이달 초 '루이뷔통 클래식 보헴 런'이란 타이틀로 부다페스트에서 출발,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프라하까지 달리는 자동차 경주를 개최했다. 그리고 이 행사의 피날레 파티를 9일 바로크 동상들로 장식돼 있는 카를교에서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행사가 열리는 동안 일반인들의 다리 이용이 전면 금지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프라하 시민들이 제동을 걸었다.

1989년 학생 신분으로 '벨벳 혁명'을 주도했던 마틴 메지스트릭 상원 의원이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메지스트릭은 "만약 루이뷔통에 돈을 받고 다리를 빌려준다면, 이는 국가적 문화유산을 문화 매춘부로 만드는 꼴"이라며 목청을 높였다.

문화부 장관과 프라하 시장도 돈을 받고 특정 기업에 독점적으로 다리를 빌려줄 수는 없다며 가세했다. 그들은 "프라하 특유의 상징물인 카를교는 모든 프라하 시민과 방문객들이 그 주인"이라며 "다리를 팔거나 사람들로 하여금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일자 루이뷔통 측은 부랴부랴 파티 장소를 다리 근처 강변으로 바꿨다. 루이뷔통의 안 카테린 그리말 유럽 담당 홍보국장은 AFP와의 인터뷰에서 "(프라하 도심 구청의) 허가를 받았으나 논란이 있음을 알고 다리 임대 계획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루이뷔통은 과거에도 세계 유명장소에서 자동차 경주를 마감하는 행사를 열어 왔다. 루이뷔통은 이번 행사를 위해 당초 카를교를 임대하는 조건으로 5만 유로(약 6100만원)가량의 임대료를 프라하 시청 측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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